'실세' 왕세자, 유력 성직자 잇달아 파격 발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외출할 때 반드시 입어야 하는 검은색 아바야(목부터 발등까지 가리는 느슨한 통옷)를 놓고 이를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아바야를 입어야만 무슬림 여성으로서 정숙함이 확인되는 것도 아니고, 이슬람의 규범상 이를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진보적 인권 단체가 아닌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종교계 유력 인사가 제기한다는 점에서 조만간 '파격적인'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마침 무함마드 왕세자가 추진하는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사우디에서 여성의 운전, 축구경기장 입장, 이혼 시 양육권 확보가 허용된 터라 이런 예상은 더 힘을 얻는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19일 미국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여성의 복장이 정숙하고 존중받을 만하다면 아바야를 의무적으로 입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이보다 한 달 정도 앞선 2월10일엔 사우디 최고 종교기관인 원로종교위원회의 위원 셰이크 압둘라 알무틀라크가 현지 방송에 출연, "이슬람권에서 신실한 무슬림 여성 가운데 90%가 아바야를 안 입는다"면서 "사우디도 여성에게 아바야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슬람 성지 메카의 '권선징악 위원회'(옛 종교경찰) 전임 위원장이자 성직자인 셰이크 아흐마드 알감디도 28일 무함마드 왕세자의 아바야에 대한 관점이 이슬람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동조했다.
셰이크 아흐마드는 "이슬람 율법이 검은색만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검은색 아바야와 히잡을 사우디 여성의 주된 복식이라고 부추기는 행위는 알사흐와파(무슬림형제단이 사우디에서 주창한 반미 이슬람주의, 사우디 왕실과 대립)가 종교적 해석을 악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정숙과 겸양을 나타낸다면 어느 복식이든 괜찮다"며 "아바야의 색과 디자인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기반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유력 일간 걸프뉴스도 29일자에 사우디의 아바야 찬반 논쟁을 보도했다.
이 신문에 한 사우디 여성은 "사우디에서는 아바야를 입고 외국에 나가면 벗어버리는 것은 위선적"이라면서 "아바야를 안입는다고 해서 내가 덜 이슬람적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우디 내 찬반 의견을 모두 전하긴 했지만 가장 사우디와 밀접한 걸프 국가인 UAE 정부 소유의 일간지가 아바야를 '논란 거리'로 다루는 기사를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더 큰 자유를 원하는 젊은 층, 특히 사우디에서 사회 활동과 법적 권한이 제약됐던 여성층의 지지에 관심이 높다.
그는 사우디가 그간 지나치게 교조주의적 이슬람에 치우쳤다면서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터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강경한 이슬람 원리주의와 여성 억압의 상징처럼 여겨진 강제 아바야를 손볼 가능성이 크다.
이슬람권에서 여성의 복식을 강제하는 곳은 사우디와 이란이다.
사우디의 경우 자국민 여성은 외출 시 머리카락을 완전히 가리는 검은색 히잡과 아바야를 입어야 하고 외국인은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아바야는 되도록 입어야 한다.
이란에선 히잡을 무조건 써야 한다. 대신 상·하의는 팔다리를 노출하지 않으면 어느 복장이든 관계없다. 이란의 히잡은 검은색이 아니어도 되고 대부분 앞머리를 내놓는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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