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젊은 실세' 왕세자, 미국 대륙 2주간 '장기 횡단 외교'

입력 2018-04-01 19:06  

사우디 '젊은 실세' 왕세자, 미국 대륙 2주간 '장기 횡단 외교'
대규모 무기구매로 이란 견제…워싱턴에서 LA까지 종횡무진
'온건한 정상 이슬람국가' 차기 지도자 이미지 홍보 주력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국영 통신을 통해 이색적인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이 사진엔 사우디의 차기 권력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미국 뉴욕의 스타벅스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모습이 담겼다.
환하게 웃는 그는 일반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노타이 양복 차림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이 사우디의 실세 왕세자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미국에서 일하는 아랍인 회사원 정도로 보이는 수수한 사진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곳에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을 만났다.
사우디와 미국의 우호 관계는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번 방문은 여러모로 색달랐다.
지난달 19일 워싱턴에 도착한 무함마드 왕세자는 2주째 미국 여러 도시를 돌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각계 인사를 만나고 있다.
사우디 언론 등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시작으로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존 케리·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미 상·하원 대표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 미국 정계의 거물이 망라됐다.
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같은 미국 주요 기업 경영자와 투자자 50여명 등 경제계 인사들도 두루 만났다.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등 미디어 분야 유력인사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리적으로는 워싱턴, 뉴욕, 보스턴, 텍사스,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미 동부에서 중부를 거쳐 서부까지 횡단하고 있다.
사우디 왕실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체류 기간은 2주 안팎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사우디 정상이나 다름없는 지도자의 보기 드문 '장기 출장' 인 셈이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번 미국 방문은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우선 이란을 최대의 힘으로 압박하는 데 있어 미국과의 공조를 확인하기 위한 게 첫번째 목표이고, 나름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는 미국을 방문하자마자 6억7천만(약 7천122억원) 규모의 무기 구매 계약을 발표해 트럼프 대통령을 흡족하게 했다.
그러면서 미국 주요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란과 전쟁, 이란의 핵무기 개발 우려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각했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12일을 이란 핵 합의 재협상 시한으로 선언한 터라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번 방문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수뇌부를 향해 대이란 강경정책을 주문하고 이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약속했다.
사우디는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핵 협상을 성사한 데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과 경계를 표했었다.
소원했던 미-사우디 관계가 이번 무함마드 왕세자의 미국 '횡단 외교'로 완전히 복원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우디에 대한 국제사회의 고정관념을 벗어버리려는 게 이번 방문의 두번째 목적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친미 국가이긴 했지만 전제적 절대 군주와 보수 이슬람 종교의 권력이 통제하는 '폐쇄적 전근대 국가'라는 인식이 강했던 게 사실이다. 세계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여성 인권 제한과 공개 참수형은 사우디를 '석유는 많지만 다가갈 수 없는 왕국'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했다.
33세의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런 사우디를 온건한 이슬람을 유지하는 정상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곧 사우디 왕위에 오를 그가 미국 언론과 잇따라 인터뷰하며 사우디의 현안과 미래상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은 기존 사우디 왕실의 관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사우디 전통 의상을 벗고 양복을 입고 미국 기업인을 만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친근하고 격식 없는 장면을 연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석유 왕국의 후계자가 아니라 현대적인 개혁가의 이미지를 홍보한 것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 2천억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태양광 사업을 추진한다고 뉴욕에서 발표했다.
노쇠한 석유 왕국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가 이끄는 첨단 미래 국가로 변신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과시한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미 여성 운전 허용, 영화관 허가, 대중문화·관광 진흥 등 정상국가로 향하는 파격적인 조치로 주목받았다.
동시에 예멘 공습, 이라크와 접근, 카타르 단교 등을 주도해 중동 내 갈등을 고조하는 역할도 했다.
그의 이런 대외활동에 대해선 외부적으로 이란과의 긴장을 최고조로 높여 경쟁자가 많아 불안 요소가 잠재한 왕권을 강화하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개혁가 또는 군사적 모험주의자로 크게 갈린다.
'파격'으로 묘사되는 그의 정상국가를 향한 전례 없는 행보에 대한 전망이 조심스러운 까닭이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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