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마을 37km 연결해 만든 길…소설 순이삼촌, 영화 지슬 배경 무대로 평화 노래해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3월 마지막 주말(31∼4월 1일) 제주는 대체로 맑다가 구름 많은 날씨를 보이겠다.
제주4·3 70주년을 맞아 다음 달 3일 거행되는 희생자 추념식을 앞두고 있다.
역사의 흔적이 새겨진 제주4·3길을 걸으며 진상규명의 정신인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봄빛으로 물든 자연경관에도 푹 빠져보자.
◇ 대체로 맑다가 구름 많음
토요일인 31일은 대체로 맑은 날씨를 보이겠다.
아침 최저기온은 9∼10도, 낮 최고기온은 18∼19도로 예상된다.
일요일인 4월 1일은 구름 많은 날씨가 예상된다.
아침 최저기온은 11∼12도, 낮 최고기온은 19∼20도로 예상된다.
바다의 물결은 제주도 모든 해상과 남해 서부 먼바다에서 0.5∼3m로 일겠다.
◇ 4·3길 따라 평화를 위한 '다크투어'
제주4·3길은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하기 위해 2016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4·3길은 조천 북촌마을과 안덕 동광마을, 표선 가시마을, 남원 의귀마을, 한림 금악마을 등 5개 마을 37km다.
4·3 당시 주민 학살 등 아픈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조천 북촌마을은 현기영 4·3 소설 '순이삼촌'에 등장한다.
북촌마을은 함덕 해수욕장이 부근에 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안 마을이다.
마을 길을 따라 걷는 일은 즐거운 체험 그 자체이나 곳곳에서 아픈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1949년 1월 17일 북촌초등학교 서쪽 고갯길에서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피살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토벌대가 마을 주민 300여 명을 학살됐다.
학살은 북촌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서쪽 '너븐숭이'와 동쪽 '당팟' 등 2곳으로 나눠 이뤄졌다.
당팟 부근에 있는 '정지퐁낭 기념비'에는 4·3 당시 총탄 자국들이 선명히 남아 있다.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북촌포구와 '몬주기알'에서도 경찰에 의한 학살이 이뤄졌다.
2009년 위령제단과 북촌 4·3기념관 및 위령탑이 조성됐다. 소설 순이삼촌 문학비도 세워졌다.
너븐숭이는 기념관 인근에, 당팟은 현재 북촌리사무소 인근에 각각 위치해 있다.
북촌마을 4·3길은 2016년 12월 총 7㎞ 구간으로 개통했다. 성인 걸음으로는 약 2시간가량 걸린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신혼여행지는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다. 그곳에 핀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고 있다.'(이산하 장편서사시 '한라산' 중)
제주 섬 남서부에 있는 안덕 동광마을의 아름다운 경관 속에도 4·3의 상처가 있다.
1948년 11월 15일 동광리에 들이닥친 토벌대는 주민들을 무등이왓에 집결하도록 하고 구타하거나 총살했다.
주민들은 무차별 공격을 피해 서쪽 산간지역에 있는 자연 동굴인 '큰넓궤'와 '도엣궤'으로 숨어 들었다.
그러나 같은 달 중순 토벌대에 발각됐고 주민들은 재판 절차도 없이 서귀포시 정방폭포 부근에서 학살당했다.
유족들은 시신이 겹겹이 쌓여 썩어 있거나 바다에 떠내려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희생자 9명의 '헛묘'(시신 없는 묘) 7기를 동광마을에 조성, 원혼을 위로했다.
동광마을의 아픔은 오멸 감독의 4·3 영화 '지슬'의 배경이다.
동광마을 4·3길에는 또 잃어버린 마을인 '삼밧구석마을 터'가 있다.
표선 가시마을 4·3길(총 길이 9㎞)에도 '새가름'이라는 잃어버린 마을이 있다.
잃어버린 마을은 산간마을에 대한 소개령이 진행되면서 마을이 불타 없어진 후 재건되지 않은 곳을 말한다. 마을 자체가 송두리째
없어진 것이다.
새가름은 현재 가시마을 남쪽에 있다. 한때 20여 가구 100여 명이 살기도 했으나 1948년 4·3으로 잿더미가 됐다.
새가름 인근 '마릿두동산'은 4·3 당시 외부인 진입을 감시하는 보초를 서던 곳이다.
마을 북쪽 언덕에서 외부인의 접근이 목격되면 깃대를 내리는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고 마릿두동산에서는 그 신호를 보고 다시 같은 방법으로 주민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방법으로 연락이 이뤄졌다.
당시 외부인으로 인한 피해로 주민들이 낯선 사람들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서귀포시 동쪽 산간마을에 자리 잡은 의귀마을은 4·3 당시 의귀리, 수망리, 한남리, 신흥리 4개 마을의 교육 중심지였다.
그때 의귀초등학교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는데, 육군 제2연대 1대대 2중대가 주둔했다.
1949년 1월 12일 무장대와 육군 부대의 전투가 의귀초등학교에서 벌어져 군인 4명이 숨졌다.
살아남은 군인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의귀초에 수용한 80여 명의 주민들을 학교 동쪽 밭에서 학살했다.
이때 희생된 주민들의 시신을 초등학교 서쪽 한 곳에 안장해 '현의합장묘'(의로운 넋들이 함께 묻혔다)로 이름 지었다.
음력 8월 24일에는 이곳에서 위령제가 봉행된다.
의귀마을 4·3길에서는 의귀초등학교와 현의합장묘 물론 100전투경찰사령부 1개 소대가 주둔한 '민오름주둔소', 전투 중 숨진 무장대의 무덤인 '송령이골', 4·3 당시 주민들이 은신했던 자연 동굴인 '영궤' 등이 있다.
의귀마을 4·3길은 총 7㎞다.
현재는 패러글라이딩 시설이 조성돼 많은 항공 레저객들이 찾는 금오름 주변 한림 금악마을도 4·3의 광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금악마을에도 '웃동네'와 '동가름'이라는 2곳의 잃어버린 마을이 있다.
또 1950년 8월 20일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송악산 섯알오름 일본군 탄약고 터(현재 백조일손묘역)였던 곳에서 무참히 학살된 무고한 민간인들이 묻힌 만뱅듸묘역이 있다.
금악마을 4·3길은 7㎞ 구간에 웃동네, 동가름, 만뱅듸묘역, 금오름, 진지동굴, 처녀당 등 4·3 당시의 흔적이 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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