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잃는 영국 선술집 '펍', 지역자산으로 되살아날까

입력 2018-03-30 20:15   수정 2018-03-31 07:44

설 자리 잃는 영국 선술집 '펍', 지역자산으로 되살아날까
커피전문점·재개발 등에 떠밀려 최근 6년간 전체 10% 문 닫아
2012년 법 제정으로 매각 시 지역사회에 우선권 부여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영국 남부의 조용한 시골 마을인 버펌(Burpham)에는 11세기에 지어진 세인트 메리 교회가 있다.
교회 맞은편에는 영국의 전통 선술집인 펍(Pub) '더 조지(The George)'가 1736년부터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른 많은 시골 마을처럼 세인트 메리 교회와 '더 조지'는 크리켓 경기장과 함께 버펌의 매력을 더해주는 공간이다.
'더 조지'는 2013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나섰다.
오랫동안 버펌에 거주해 온 데이비드 킹 부부와 30년 전 결혼식 관련 행사를 '더 조지'에서 가졌다는 로버트 에식스는 펍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킹은 은퇴 전 런던에서 시설관리 회사를 운영했고, 에식스는 런던 금융가에서 일하는 등 이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다.
이들의 주도로 '더 조지'에서 많은 추억을 쌓은 동네 사람들이 펀딩에 참여해 회사를 설립, 펍을 사들인 뒤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더 조지'는 여전히 지역사회 중심지로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더 조지'와 같이 경영난에 처하거나 매각 위기에 있는 펍을 지역주민 공동체가 사들여 유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국에서 펍은 맥주와 간단한 음식 등을 먹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지역 허브와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우체국이나 대형상점 등이 부족한 시골에서 펍은 지역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장소로 여겨진다.



펍의 '유무'는 집값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2천 명 이상의 영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명 중 1명은 걸어서 15분 이내에 펍이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고, 기혼자는 그 비율이 3분의 1로 높아졌다.
이는 '근처에 지하철이나 기차역이 있어야 한다'는 응답 비중과 비슷했고, '우체국이 있어야 한다'는 답변보다는 더 높은 수준이다.
이런 영국인들의 '펍 사랑'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요 위치에 자리 잡은 펍의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로컬 데이터 회사(Local Data Company)에 따르면 2012년 1월 이후 영국 전역에서 2천300곳의 펍이 문을 닫았다. 이는 전체의 10%에 해당한다.
특히 그레이터 런던과 스코틀랜드 지역의 펍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커피전문점, 대형마트 등이 목 좋은 곳에 있는 '펍'에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최대의 커피전문점인 '코스타(Costa)'나 편의점인 '테스코 익스프레스(Tesco Express)'가 펍이 있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부동산업자들도 펍을 매입한 뒤 주택단지 등으로 재개발하기도 한다.
이처럼 영국의 전통을 유지하는 펍이 바(bar)나 커피숍 등으로 대체되자 영국 정부는 2012년 9월 '지방주의법(Localism Act)'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막대한 자금을 무기로 달려드는 개발업자에게 펍이 팔리는 것을 막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법의 도입으로 지역사회가 펍은 물론 상점과 도서관, 공원 등 공동체의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우선 매입해 운영할 기회를 갖게 됐다.
버킹엄셔의 딘턴에 있는 '세븐 스타즈(Seven Stars)' 펍의 매각 절차도 2011년 진행됐다.



그러나 현재 소유주인 딕 오드리스콜과 지역주민 수십명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고 부족한 자금은 은행 대출을 받아 사들였고, 새로 펍을 운영할 사람도 찾았다.
오드리스콜은 "우리가 펍을 사고 난 뒤 (경영보다는) 그냥 앉아서 술을 마시는 편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투자에 따른 리스크가 적지 않았지만 새롭게 탈바꿈한 '세븐 스타즈'는 곧바로 자리를 잡았다.
1주일 매출액은 500 파운드(한화 약 75만 원)에서 1천200 파운드(약 180만 원)로 증가했다. 임대료가 확 줄어든 덕분이었다.
펍은 6년간 주주들에게 투자액의 26%를 배당금으로 돌려줬다.
'세븐 스타즈'는 새로운 거주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도 되고 있다.
18개월 전 이곳으로 이사 온 벤 도즈 부부는 "펍이 없었다면 아마 이곳에 집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며 "'세븐 스타즈'는 정말로 딘턴에 어울린다. 여기 집값에 10∼15%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FT는 '세븐 스타즈'와 같은 펍이 주택 매매를 도울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의 삶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pdhis9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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