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38억년전의 어느 순간 '빅뱅'이라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우주가 생성됐다. 이후 우주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지구에 등장했다. 지금까지 현대 물리학이 제시하는 우주론이다.
줄기세포 분야를 연구하는 생명공학자 로버트 란자 미국 웨이크포레스트 의대 교수는 이같은 시각에 도전한다. 그는 빅뱅에서 시작한 양자물리학 등 기존의 이론들이 물리적 세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면서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로 '생물중심주의'(Biocentrism. 바이오센트리즘)를 주장한다.
그는 밥 버먼 미국 메리마운트대 천문학과 교수와 함께 쓴 신간 '바이오센트리즘'(예문아카이브 펴냄)에서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는 핵심 요소로 '의식'(Consciousness)을 강조한다.
생물중심주의의 제1원칙은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은 의식을 수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기존 세계관에서는 세상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나 동물의 눈은 외부 세상을 받아들이는 창문이다. 만약 죽거나 의식이 혼미해지거나 시각 기능을 상실한다고 해도 여전히 외부 현실은 똑같은 모습이다. 우리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와 무관하게 외부 현실은 존재한다.
그러나 생물중심주의에서는 생물학적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은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주황색으로 빛나는 촛불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사실 주황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황색 불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것을 '주황색'으로 인식하는 인간의 시각 시스템이 필요하다. 무지개도 마찬가지다. 무지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관찰자의 존재가 필요하고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무지개의 모습도 달라진다. 생물중심주의 관점에서는 인식 주체가 없으면 무지개도 없다.
생물중심주의에서는 '외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외부 세상과 내부 자아를 구분하는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는 시간과 공간 역시 독립적인 실체가 없으며 생명체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일 뿐이다. 책은 이런 식으로 생물중심주의의 7가지 원칙을 제시하며 기존 현대 물리학의 한계를 비판한다.
란자 교수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엇갈린다. '우주와 생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찬사와 '신비주의를 옹호하는 유사과학'이라는 비판이 공존한다.
란자 교수는 "생물중심주의는 기존 과학으로부터 급진적인 일탈처럼 보이며 사실 그렇다"면서도 "분명하게 생물중심주의는 주류 과학에 뿌리를 내린 학문 분야이며 과학적 접근방식의 논리적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은 "바이오센트리즘은 과학적·철학적 엄밀성이 결여돼 있지만 현대 물리학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과학적 소양이 얕은 독자에게는 매우 위험한 책이지만 물리학적 관점이 뚜렷한 독자들에게는 과학철학적인 도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세연 옮김. 28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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