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 주도…군부·기독교인이 지지
앞으로 헌법 개정 통해 장기집권 시도할 우려도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재선에 성공한 압델 파타 엘시시(64) 이집트 대통령은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급부상한 지도자다.
엘시시는 이집트군에서 40여 년간 몸을 담았고 국방장관을 거친 군인 엘리트 출신이다.
엘시시 대통령은 1954년 카이로 알가말리야에서 태어났고 그의 집안은 매우 보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77년 이집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기계화 보병부대에서 군 경력을 시작해 기갑부대 사령관, 이집트 북부 사령관 등 요직을 거쳤다.
또 1992년 영국 합동지휘참모대학(JSCSC)에서 수학하고 미국 육군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등 서방 국가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다.
이후 군부에서 승승장구하며 실세로 자리잡았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시절인 2011년 최연소로 국방부 정보국장에 올랐고 2011년 초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무바라크 정권이 갑자기 붕괴해 군 수뇌부 20여명이 군최고위원회(SCAF)를 구성했을 때 최연소 위원으로 참여했다.
엘시시 대통령의 국민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는 2012년 6월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에서 국방장관에 임명되고 나서다.
그는 이듬해인 2013년 7월 무르시 대통령 축출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당시 그는 이집트의 국민적 영웅인 나세르 전 대통령과 비유되며 '새로운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반대세력을 유혈로 진압한 엘시시 대통령은 2014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97%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때 군부의 확고한 지지를 등에 업었고 기독교도들의 지지도 받았다.
국가 최고 권력을 거머쥔 엘시시 대통령은 이슬람조직인 무슬림형제단 인사들을 탄압하는 등 권위주의적 통치를 보였다.
반면, 콥트교의 성탄절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기독교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며 종교적 극단주의의 척결을 주장하기도 했다.
엘시시 대통령의 당선은 군부 정권으로 회귀를 의미했다.
이집트에서 1952년 공화국 체제가 출범한 뒤 등장한 대통령 6명 가운데 5명이 군 출신이다.
장군 출신의 초대 대통령인 무함마드 나기브(1953~1954 집권)를 시작으로 가말 압델 나세르(1956~1970 집권), 안와르 사다트(1970~1981 집권), 호스니 무바라크(1981~2011 집권) 등이 군인 출신이다.
이집트에서 지난 60여 년 동안 민간 출신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는 무르시 전 대통령이 집권한 1년에 불과하다.
군부 통치에 대한 우려 속에 집권한 엘시시 대통령은 경제 침체와 테러에 따른 사회 불안 등의 과제에 직면했다.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가 시나이반도 북부 등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관광산업이 어려움을 겪었다.
외화 부족에 시달리던 이집트는 결국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년간 12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합의했다.
또 이집트 정부의 식품, 연료 등에 대한 국가보조금 삭감으로 물가가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됐다.
엘시시 대통령이 이번에 연임한 것은 '아랍의 봄'의 의미가 퇴색하고 군부 정권이 연장된 것으로 볼수 있다.
일각에서는 엘시시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노리는 '현대판 파라오'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엘시시 대통령은 작년 11월 "3선 연임의 대통령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이집트 헌법상 대통령은 한 차례만 연임할 수 있다.
그러나 엘시시 대통령이 앞으로 의회 등의 지지세력을 앞세워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2011년 2월 민주화 시위에 물러나기까지 무려 30년 동안 통치했던 것처럼 절대권력에 욕심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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