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회담, 역대 정상회담 교훈 타산지석 삼아야"

입력 2018-04-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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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회담, 역대 정상회담 교훈 타산지석 삼아야"
WSJ, 성급한 준비·충동적 결정 위험성 경고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 전격적으로 합의된 도널드 트럼프-김정은 간 미북 정상회담의 명암을 지적하며 시대의 전환점으로 주목을 받았던 미 대통령의 역사적 정상회담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WSJ은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성공적인 정상회담의 본보기로 거론하면서 당시 회담을 위해 미 행정부가 2년여에 걸쳐 세심하게 준비를 했음을 지적했다. 정상회담은 시의적절성(타이밍)과 충분하고 세심한 사전 준비가 성공의 요건임을 강조했다.
WSJ은 특히 강력한 반공주의자였던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역설적으로 성공을 거둔 점을 언급하면서 트럼프-김정은 회담과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정부 관리와 민간인 신분으로 오랫동안 북한을 상대해온 동북아전문가 마이클 그린은 WSJ에 북한을 결국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압박작전을 평가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측의 덫에 걸릴 위험성을 경계했다.
백악관과 국방부 관리를 지낸 그린은 김정은이 내건 한반도 비핵화 논의 용의를 '낡은 속임수'로 일축하면서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의 핵무기 제거보다 먼저 미국의 핵우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WSJ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신중한 준비와 미국의 목표에 대한 명확한 사고를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인 의사결정에 조심스러운 경고를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회담에 이어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WSJ은 미북 회담에 앞서 본보기가 될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거론했다.



▲ 아이젠하워-카스트로(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에 성공한 후 워싱턴을 방문해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만나길 원했으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를 거절하고 대신 당시 리처드 닉슨 부통령과 만나게 했다.
만약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카스트로와 만났다면 미국과 쿠바 관계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닉슨 당시 부통령은 카스트로와 면담 후 메모를 통해 쿠바 측이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고 평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이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식 계율에 지나친 순진함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케네디-흐루쇼프(196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존 케네디 미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지도자 간의 정상회담은 성급하고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채 열린 정상회담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흐루쇼프에게 핵실험금지조약(CTBT) 논의를 위해 정상회담을 제안해 빈에서 만났다.
그러나 회담은 독일의 장래에 대한 설전으로 변모했고 다혈질의 흐루쇼프가 미국의 젊은 대통령을 괴롭히는 기회가 됐다.
케네디 대통령은 나중 이 회담이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소련 측이 쿠바에 미사일 배치를 결정하도록 한 계기가 됐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닉슨의 중국 방문(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마오쩌둥(毛澤東)과의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수 있으나 닉슨-마오 회담은 한편으로 오랜 기간 신중하게 준비된 정상회담의 장점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강력한 반공주의자로 꼽혔던 닉슨이 마오를 만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간주됐으나 오히려 이러한 배경이 그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곧 닉슨이 공산주의 중국을 순진하게 상대할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닉슨에게는 (트럼프처럼) 충동적인 측면이 없었다.
닉슨 행정부는 정상회담에 앞서 2년 이상 중국과 조용한 준비 협상을 벌였고 닉슨은 마오와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만나고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레이건-고르바초프(1986년)
시기적으로 맞지 않고 준비가 덜 된 정상회담의 폐해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이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소련의 신임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군축협의를 위한 초청을 수락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만났다.
레이건 대통령은 그러나 회담에서 난데없이 모든 핵무기의 제거를 제의해 당시 안보보좌진을 당혹게 했다.
보좌진은 급거 레이건 대통령 제의 무마에 나섰으나 당시 조지 슐츠 국무장관은 레이캬비크 회담의 제의가 후일 군축합의의 초석이 됐다고 주장했다.
yj378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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