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공동선언, 北핵개발로 사문화…그후론 남북간 실질적 핵합의 없어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관련한 모종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가운데 과거 남북이 이룬 핵문제 관련 합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별도의 북핵 관련 합의 문서가 나올지는 불확실하지만 북핵 문제의 담판장이 될 5월 북미 정상회담에 연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핵문제 관련 합의가 정상회담 결과물에 담길지 여부는 한반도 정세에 관건이 될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남북간 핵합의의 최고봉은 1992년 발효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라는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6개항으로 구성된 이 선언은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는 전문에 이어 "남과 북은 핵무기를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또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하고,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들어있다. 이와 함께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해 남북핵통제 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선언을 계기로 주한미군에 배치된 전술 핵무기가 철수했지만 북한은 핵개발의 길로 내달렸고 2006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을 기점으로 합의는 사실상 사문화했다. 북한의 핵실험 등 도발이 있을 때마다 우리도 이 선언의 파기를 공식 선언하고 독자 핵무장 또는 전술핵 재배치를 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나왔지만 아직 정부는 이 합의의 파기를 선언하지는 않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3일 "남북간에 비핵화공동선언을 되살릴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진행중이던 1992년 당시와, 이미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2018년의 상황이 다르기에 이 선언을 그대로 되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달라진 상황에서 비핵화공동선언 그 자체를 복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며 "선언에 담긴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와 선언의 취지를 되살리는 내용을 새로운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넣는 것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핵화공동선언 채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불거진 제1차 북핵위기, 2000년대 제2차 북핵 위기를 거치며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논리 속에 남북간 핵 협상을 사실상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북미 제네바기본합의(1994년)로 북핵 문제가 봉합된 상태에서 열렸던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인 6·15선언에는 핵 문제가 들어가지 않았다.
또 북한의 1차 핵실험 이듬해 열린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인 10·4선언에는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2005년)과 2·13 합의(2007년)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문구가 들어갔지만 6자회담이라는 다자회의 틀에서 이뤄진 합의를 장려하는 수준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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