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 휘둘리는 교육정책…혼란은 학생·학부모 몫(종합)

입력 2018-04-03 20:13  

지방선거에 휘둘리는 교육정책…혼란은 학생·학부모 몫(종합)
정시확대·유치원 영어 등 갈팡질팡…밀어붙인 정책도 효과는 의문
교권 강화 등 갑작스러운 정책발표는 '선거용' 지적



(서울·세종=연합뉴스) 고유선 이재영 기자 = 6.13 지방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교육정책이 방향을 잃은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정책혼선을 이어온 교육당국이 특히 올해 들어서는 논란이 많은 정책은 미루고, 반발이 심한 사안은 기존 정책기조를 갑자기 바꾸는가 하면, 표심을 노린 듯한 선심성 정책을 내놓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영어 공교육 활성화 계획과 교권 침해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활동 보호계획을 발표했다.
영어 공교육 활성화 계획은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를 원하는 모든 공립초에 배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조 교육감은 "초등학교 1∼2학년 영어수업 금지와 함께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가 같이 논의되면서 교육청에도 항의가 많이 들어왔다"며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고자 정책적 수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개인적으로는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1년 미룰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6월 '새 정부 교육정책 제안'에서 "유치원이 정식 교육과정에서 영어수업 등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막자"고 제안한 점을 감안하면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조 교육감이 함께 발표한 교육활동 보호계획은 교권을 침해한 학생을 학교장이 전학시키거나 반을 바꿀 수 있도록 교원지위법 개정을 제안하는 내용이다.
이 역시 '선거용 정책'이 아니냐는 의심에 조 교육감은 "교사들이 교권침해에 '무장해제된 상태'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학생 인권을 중시하는 교육감이 교권에는 소홀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반대하고 싶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 개정의 경우 교육청이 아닌 정부와 국회 소관인만큼 '법 개정 요구'를 한다며 기자회견을 한 것은 사실상 교원 표심 잡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교육감 재선에 도전하는 조 교육감은 20일까지 단일화 후보등록을 하고 경선을 치를 예정이어서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정책발표 기자회견이다.
기존 정책이 유예되거나 뒤집히는 경우도 이어진다.
교육부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소를 정비하는 신뢰도 제고 방안을 올해 초 발표하려다가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통해 지방선거 이후인 6월에 결론을 내기로 입장을 바꿨다. 숙려제는 국민 관심이 높거나 이해관계자 간에 갈등이 예상되는 정책을 국민 의견수렴과 토론 등을 통해 결론 내는 절차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부 기재요령 개선 방안을 올해 1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개선안 마련이 다소 늦어지자 교육부 관계자들은 3월까지는 개선안을 완성할 것이라고 수 차례 밝혔다.
하지만 대학 입시와 직결되는 학생부 개선안을 지방선거 전에 발표하기 부담스러워진 교육부가 '면피용'으로 숙려제를 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말 유치원 영어 특별활동 금지를 검토한다고 밝혔다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롯해 반대 여론이 이어지자 올해 1월 이 방침을 뒤집고 유치원 방과후 영어 특별활동을 사실상 허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방과 후 영어수업은 올해부터 초등학교 1∼2학년에서 금지됐지만 유치원에서는 허용돼 영어교육의 정책 일관성이 무너지는 촌극이 벌어졌다.
교육부는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여부도 지방선거 이후인 올해 하반기에 숙려제로 검토하기로 해 여론 눈치를 보다가 정책 결정을 미룬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2020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정시모집 확대를 추진한 것은 아예 기존 정책을 뒤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은 3월말 서울대·고려대·이화여대·중앙대·경희대 등 5개 주요 대학과 접촉해 2020학년도 입시에서 정시모집 인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지금까지 교육부가 다양한 인재 선발을 내세워 학생부종합전형을 위주로 한 수시모집을 늘려온 것과 정반대의 행보다.
교육부는 수시 쏠림 현상이 심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교육현장에서는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학생부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학생부 위주의 수시모집을 줄이고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을 확대한 것은 교육부가 오랜 수능 무력화·수시 확대 정책을 갑자기 뒤집고 지방선거용 '정책 유턴'을 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비슷한 시기에 교육부는 각 대학에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완화·폐지해 달라고도 주문했다.
대학들이 학종전형 등 특정 전형을 급격하게 늘리는 것을 막고 수시모집에 지원하는 수험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최저 기준 폐지가 오히려 수능의 영향력을 위축시켜 정시모집 비율이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했고, 고려대를 비롯해 성균관대·경희대 등 주요 대학들은 최저 기준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판을 감수하고 밀어붙인 정책이 제대로 효과조차 보지 못한 셈이다.
교육당국의 이런 행태에 교육계에서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비판이 일고 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교육당국의 행보가) 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수습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며 "그런데 대입의 경우 학종 개선안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이걸 정책 숙려제로 미뤄놓고 정시만 소폭 확대하는 것은 민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도 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대표는 "교육당국이 학교 현장은 물론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오히려 혼란을 유도하고 있다"며 "교육분야 정책 지지율이 30%대로 다른 분야보다 낮은데는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cin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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