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 "이란은 '악의 삼각형' 중 첫번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2주간에 걸친 미국 방문을 계기로 이란을 압박하는 '삼각동맹'의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게 됐다.
이 삼각동맹의 각 꼭짓점엔 이란을 공적으로 둔 미국과 사우디, 이스라엘이 위치한다.
전통적으로 밀착 관계였던 미국과 사우디,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맹은 새로울 게 없다.
다만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하면서 사우디와 잠시 소원해졌으나 이란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정부로 바뀐 뒤 사우디와는 관계가 복원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 뒤 첫 해외 순방지를 사우디로 정한 것은 이런 미국의 중동 정책 노선의 변화를 방증한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방미는 양국 협력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무함마드 왕세자의 방미 중 눈에 띄는 점은 아랍 이슬람권에서 금기였던 이스라엘을 대하는 사우디의 태도다.
아랍 이슬람권 대부분 국가는 팔레스타인 문제 탓에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우디는 아랍 이슬람권의 종주국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에 '모범'을 보여야 할 처지다.
그러나 '더 큰 적'인 이란 앞에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내밀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잡는다는 의혹의 시선이 사우디에 쏠린 터였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강조하면서 이스라엘과 물밑 접촉설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무함마드 왕세자는 2일 미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자신의 땅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의외의 발언으로 이런 의혹을 사실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는 유엔이 지지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국가 해법을 원론적으로 언급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뜻을 해석될 수도 있다.
아랍 이슬람권에선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는 못하지만 실체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온건한 주장은 종종 제기됐으나, 이스라엘의 '권리'까지 옹호하지는 않았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어 "이스라엘은 크기는 작지만 경제적으로는 대국으로, 평화가 정착된다면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와 이집트, 요르단 등이 많은 이익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한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부각한 것은 '악의 삼각형'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란, 무슬림형제단,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을 이슬람 극단주의를 퍼뜨리고 안보를 위협하는 악의 3대 축으로 꼽았다.
그는 "이란 최고지도자는 히틀러마저 좋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할 정도다"라면서 "히틀러는 유럽을 정복하려했지만 이란 최고지도자는 전세계를 점령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란을 절대 악으로 묘사해 팔레스타인을 탄압하고 거주지를 강제 점령한 이스라엘과 대이란 공동전선을 펴는 명분으로 삼은 셈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달 19일부터 미국을 방문하면서 미국 유력 매체들과 잇따라 인터뷰하면서 이란에 대한 제재와 핵개발 저지를 주문하면서 전쟁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등 미국과 이스라엘과 보조를 맞췄다.
트럼프 정부는 다음달 12일까지 이란이 핵합의를 재협상하겠다고 동의하지 않으면 이를 파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란 국영방송은 3일 무함마드 왕세자가 미·이스라엘공공위원회(AIPAC), 반명예훼손연맹(ADL), 북미유대인연맹(JFNA) 등 미국 내 유대계 이익단체 관계자를 비공개로 만났다고 보도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밀착을 기정사실로 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동전선이 가설로 끝날 수 있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공식적으로 사우디는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을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을 여전히 지지한다.
그러나 최근 가자지구 시위대 유혈진압에서 보듯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 전혀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사우디의 '이중 플레이'가 이란을 압박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슬람 종주국으로서 위상엔 타격을 줄 위험도 크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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