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매체들, 북·미정상회담 합의 후 핵무력에 대해 침묵

입력 2018-04-04 16:41  

북한 매체들, 북·미정상회담 합의 후 핵무력에 대해 침묵
한·미 연합군사훈련 비난도 중단…"북·미관계 변화의 기운"이란 말로 정상회담 시사
북한 분석가 "침묵도 의중 읽는 신호다"…"`제재는 적대시 정책의 주요 내용' 주장도 주목해야"
조선신보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다"며 "윈윈전략"을 미국에 촉구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냉전 시대 `철의 장막'에 가려진 소련을 읽는 방법을 `크렘리놀로지(kremlinology)'라고 했다. 공산 정권의 권력의 핵인 크렘린 궁 내부의 변화를 공식 행사 참석 요인들의 호명이나 자리 순서 등을 보고 암호풀이 하듯 찾아내는 연구 방법론을 말한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해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서도 의사 결정 라인이 불분명한 점 등을 들어 외국의 외교관들이 백악관 내부를 이해하는 것을 크렘리놀로지에 비유하기도 한다고 전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크렘리놀로지가 필요한 대표적인 불투명 사회다.
미국의 북한 분석 전문가 로버트 칼린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객원 연구원이 3일(현지시간)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의중을 읽은 방식도 전형적인 크렘리놀로지다.
그는 "북한의 국영 매체들이 북·미 정상회담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수락한 지난 9일 이래 미국과 상대하기 위한 입장 정리 등 준비에 나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를 만나서는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서 밝힌 비핵화 발언도 북한 매체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으나 "이러한 `침묵'이 사실은 명확하게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말한 것 뿐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에서도 북한의 의도나 의중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 북한은 문 대통령 특사단이 김 위원장을 만난 뒤 미국으로 가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이래 지난 3주간 자신들의 핵무력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멈췄다.
이와 함께 북한은 핵 협상장에 갖고 나갈 입장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23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논평이 제재를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주요 내용이며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규정한 것이 그렇다.
"제재와 적대시 정책을 연결하는 것은 북한이 제재 완화를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감소로 치장할 가능성을 말해준다"고 칼린은 풀이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고 주장해온 만큼 제재의 가·감을 핵 프로그램과 연동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엔 단골 메뉴이던 미국의 군사위협에 대한 언급도 대폭 줄였다. 지난달 25일 노동신문은 한국 공군의 F-35A 40기 도입 등을 가리켜 "남조선 군부세력이…군사적 대결 책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대화외 대결은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는 종래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이 논평은 그러나 종래와 달리 1주일 전 시작된 연례 한미연합훈련이나 지난 1일 시작된 한미 독수리 연습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독수리 연습이 시작된 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장에 나타났다"고 칼린은 주목했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2월 26일 이후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북한 매체들은 명시적으론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0일 논평에서 "조·미(북·미)관계에서도 변화의 기운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교적 뚜렷하게 양자 정상회담을 시사했다.
논평은 "서로 상대의 의중도 모르는 때에 당사자들이 마주 앉기도 전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분위기를 흐려놓으며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을 "좀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지금은 자제와 인내력을 가지고 매사에 심중하면서 점잖게 처신하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
북한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로 자신들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대변하는 조선신보를 통해서는 더욱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이 매체는 북한 당국과 긴밀한 관계인 기자의 분석 기사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합의 과정을 김 위원장 지도력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김 위원장이 "국가 핵 무력을 완성한 조선이 핵시험과 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자제할 수 있다"고 밝힌 사실도 전했다. 또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으나 김 위원장이 "통이 큰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의 대북 정책을 실패한 것으로 규정한 것을 활용해, 이 매체는 김 위원장이 "'거래의 달인'을 자처하는 대통령에게 역대 전임자들이 되풀이한 실책에서 벗어나는 방도를 제시하고 결단을 촉구하게 된다"는 예측을 덧붙였다.
이어 14일 자 칼럼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설마 조선의 핵 폐기만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로 핵 폐기를 의제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또 북한 매체로선 이례적으로 "윈윈 전략"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이 매체가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 칼린은 북한이 동북아 안보구조의 재편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y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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