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서 특강…"현실을 넘어서서 이겨내는 것이 순수문학"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제주 4·3을 다룬 대하소설 '화산도'를 쓴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93) 씨는 4일 "4·3은 민중항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날 제주북초등학교에서 열린 4·3 70주년 기념 특별강연 '김석범을 만나다, 4·3 70년을 말한다'에서 "지금까지 권력층이 4·3에 대해 항쟁, 봉기 등의 말을 공식적으로 쓰지 못하게 했다. 저는 예전부터 4·3은 혁명이라고 생각해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날 제주도문예회관에서 열린 4·3문화예술축전에서 '4·3민중항쟁'이라고 새긴 백비를 일으켜 세우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울음을 터뜨렸던 그는 "이제 눕혀 있는 백비에 이름을 새겨 바깥에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민이 약 50년간 4·3에 대한 침묵을 강요당한 것에 대해 '기억의 말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권력이 기억을 말살하는 그 힘이 너무 두렵고 지독해서 도민들이 자기 기억을 잊어버린 것이다. 기억의 타살이자 자살"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이런 역사가 없다. 제주도민은 그걸 견뎌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4·3 완전 해결'에 대해서는 "우선 유족에 대한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고 트라우마 치유도 해야 한다"며 "4·3 당시 침략자는 내적으로는 이승만 정부, 외적으로는 미국이다. 이들이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를 기초로 수립됐다"며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저는 4·3의 해방이라는 표현을 쓴다. 해방은 역사의 자리매김이다. 4·3이 왜 일어났고, 어떤 경과를 밟아왔는지 알아야 한다"며 "4·3의 원인은 제주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주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쓴 '화산도'에 대해 "현실을 넘어서서 이겨내는 것이 순수문학"이라며 현실을 돌파하려는 힘이 화산도를 쓰게 했다고 회상했다.
4·3평화인권교육 관련 "나 역시 관심이 많은 부분이다. 교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며 현장을 찾은 고등학생들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강정마을에 지어진 해군기지에 미국 함정이 입항하고 있다는 군사기지 반대 활동가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제주 해군기지를 보고 싶었는데 내부는 보지 못했고, 건설 당시에 펜스 밖 먼 곳에서만 봤다"며 "이는 4·3 때부터 미국의 목적이었고, 몇십 년이 지나 현실화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강 중간 사회자인 김동현 문학평론가가 "4·3을 소설로 써 널리 알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자 청중들이 박수를 보냈고, 김 씨도 "제가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패널로 참여한 이석문 제주교육감은 "역사적 사실은 책 몇 권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역사를 경험하신 분들을 직접 만나 정서를 공유할 기회는 많지 않다"며 "4·3유족을 명예교사로 위촉해 평화인권교육을 하는 것도 그분들의 감정을 같이 기억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다. 이 특강도 그런 자리가 됐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특강에 참석한 대정고 학생들은 김 씨에게 직접 만든 4·3 추모 배지와 영화 작품을 선물했다.
제주 출신 부모를 두고 일본에서 태어난 김석범은 4·3에 대해 침묵을 강요받던 시절 작품활동을 통해 4·3을 일본에 알렸다. 1957년 최초의 4·3 소설인 '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했고, 1976년부터 20여 년간 12권 분량의 대하소설 화산도를 연재해 국제사회에 4·3의 참상을 알렸다.
'화산도'로 오사가기지로상(1984년)을, 마이니치예술상(1998년)을 각각 수상했다. 2015년에는 제1회 제주4·3평화상을, 지난해에는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받았다.
특강이 열린 북초교와 인근 관덕정 등 제주시 원도심 일대는 4·3의 도화선이 된 3·1절 기념식 발포사건과 3·10 도민 총파업 등의 무대가 된 곳이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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