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갈수록 체크하라" 연예계 미투에 '유효기한'은 없다

입력 2018-04-05 09:00   수정 2018-04-05 09:17

"잘나갈수록 체크하라" 연예계 미투에 '유효기한'은 없다
10~30년 전 잘못도 터져나와…방송·영화계 김생민·오달수 쇼크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통장요정' 김생민(45)은 10년 전 성추행으로, '천만요정' 오달수(50)는 25년 전 성추행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연예계 미투에 '유효기한'이 없다. 현재 잘나가는 스타일수록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불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연예인이라는 특성상 대중에 늘 노출이 되고 조명받고 각광받기 때문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잊고 싶은 기억'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해자를 보면 잊기 힘들고 때마침 미투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어 용기를 짜내게 된다.

◇ 과거사? 피해자에게는 현재 진행형
지난 2일 김생민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되자 일각에서는 "10년 전 일인데…"라는 반응도 나왔다. 김생민 본인과 소속사, 방송사도 비슷한 심정으로 사태 추이를 지켜봤던 듯하다. 마이너 생활 25년 만에 '대세'가 된 지 7개월째인 김생민의 현재 위상이 아까워 현실 부정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 증언의 구체성과 심각성은 충격 속 공분을 자아냈고 대중은 즉각 김생민에게 등을 돌렸다. 무엇보다 김생민이 '대세'가 됐기 때문에 피해자가 더욱 용기를 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김생민과 소속사 등은 간과했다. 과거사라고 대충 넘어가려 했던 쪽은 피해자의 고통은 10년이 지나도 현재 진행형인데 가해자는 여전히, 심지어 날이 갈수록 잘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고통을 가중했을 것이라는 점을 놓쳤다.
오달수 역시 25년 전 성추행으로 발목이 잡혔다. 피해자가 TV 뉴스에 나와 실명 인터뷰까지 했다. 오달수는 25년 전에는 이름도 몰랐던 배우지만, 현재는 출연작이 이어지는 영화계 최고 스타가 됐다. 피해자는 그런 오달수를 지켜보는 게 괴로워 폭로에 나섰다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60대의 유명 배우를 향해 36년 전 성폭행 미수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이 배우는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었으나, 이 폭로 후 외부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연예계 미투 폭로에는 오랜 세월 '상습범'에 대한 동시다발 폭로도 있지만, 이처럼 10~30년 전 과거의 일이 이제야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연예계에서는 "성추행에 관대했던 시절부터 활동해온 스타들은 언제 과거사에 발목을 잡힐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방송·영화계 피해 광범위…졸지에 일자리 잃기도
문제는 가해자 혼자만의 활동 중단이나 사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해자가 잘나갈수록 당연히 충격과 파장은 큰데, 가해자의 활동이 활발할수록 대중문화계 전반적으로 피해와 손해를 끼치게 돼 선의의 피해자들이 대거 발생한다.
당장 김생민의 활동 중단으로 인해 KBS 2TV '김생민의 영수증'과 동명의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폐지됐다. tvN '짠내투어'는 김생민 녹화분을 어쩌지 못해 6일 방송을 결방하게 됐고, 다른 프로그램들은 부랴부랴 김생민 녹화 분량을 삭제, 편집하는 중이다. 대체 출연자를 모색하거나 아예 프로그램의 구성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가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제작진과 동료 연예인, 스태프는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또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김생민과 호흡을 맞췄던 송은이와 김숙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송은이와 김숙은 같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비밀보장'의 업로드를 한주 쉬겠다는 공지를 4일 띄우기도 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으나 김생민 파문에 따른 충격으로 해석된다.



오달수의 경우는 주·조연을 맡아 촬영을 마친 영화만 4편이라 해당 제작사들이 패닉 상태다. 배우를 교체해 재촬영을 하는 것도 큰일인 데다, 오달수가 주연이라 아예 재촬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십억씩을 들여 만든 영화가 사장될 위험에 처했고, 재촬영을 해도 역시 10억~20억이 소요되게 생겼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그나마 방송 전이었기에 오달수 대신 다른 배우를 캐스팅했고, 오달수 촬영분은 폐기했다.
앞서 tvN '크로스'는 주연을 맡은 조재현이 성추문에 휩싸여 중도 하차하면서 드라마가 난도질당했다. 조재현 녹화분을 최대한 편집하고, 대본 수정을 통해 그의 역할을 중도에 사망 처리하느라 제작진은 진땀을 뺐고 드라마 스토리도 엉망이 됐다.
미투 가해자들이 출연하는 광고도 즉각 방영이 중단되고, 관련 홍보물은 폐기된다. 해당 제품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은 물론이다.



◇ 캐스팅 바꾸고 스스로 활동 중단도
이런 가운데 제작진이 캐스팅을 바꾸거나 스타가 조용히 활동을 중단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한 관찰 예능 프로그램 PD는 "최근 몇몇 스타에게 출연 제안을 했으나 고사했다"며 "나중에 보니 미투가 터져 나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부 배우는 미투 운동이 퍼져나가면서 신작을 출연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에는 일명 '지라시'(정보지)에 미투 가해자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경우도 있다.
한 방송사 간부는 "제작진이 캐스팅할 때 미투 관련 여부를 체크하고 있다"며 "소문이 먼저 도는 경우는 캐스팅에서 배제할 수 있는데, 모르고 캐스팅했다가 작품에 피해가 가는 경우가 생길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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