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관세보복을 주고받으며 무역전쟁으로 치닫더니 남중국해 하이난(海南) 해역에서 항공모함 전단 간 군사적 대치까지 벌일 전망이다. 세계 초강대국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과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운 중국의 글로벌 패권경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최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집권2기 출범 이후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미중 간의 협력체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이달 말 남북정상회담과 내달 북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한 비핵화의 실마리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격화하는 미중 갈등이 걱정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5일부터 하이난 동부 연안에 항행금지를 선포하고 항공모함 랴오닝(遼寧)과 호위 군함 40여 척을 동원해 역대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한다. 하이난성 동부에서 열리는 중국 최대의 국제외교 행사인 보아오 포럼에 맞춰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南沙>군도·필리핀명 칼라얀 군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 영유권 분쟁 당사국과 미국을 향해 군사력 시위를 하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보아오 포럼에 참석하는 시 주석이 직접 랴오닝 전단을 검열하는 관함식을 거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틀린 분석은 아닐 것이다. 남중국해 해역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호를 기함으로 한 미국 제9 항모강습단이 이미 진입해 있는 상태다. 루스벨트 호가 시 주석 방문 기간에 일본, 인도, 호주, 베트남 등과 함께 '항행의 자유' 훈련을 한다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력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은 작지만, 북한 비핵화를 위한 양국의 협력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조치 이후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관세보복 '폭탄'을 주고받는 양국의 통상갈등도 화약고이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보복관세의 연장선에서 전날 중국이 집중적으로 육성해온 첨단기술 분야의 수입품 1천300개 품목에 25%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이에 중국도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을 겨냥해 대두 등 128개 품목에 맞불 보복관세를 예고했다. 양국이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당장 칼을 빼 들 기세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미중 사이의 긴장은 전방위적으로 퍼지며 상시화하는 분위기인 것은 틀림없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협상 테이블로 나온 데는 중국의 역할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압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봤고, 이는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의 협조 없이는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국이 그간 자의든 타의든 대북제재 결의 이행에 동참한 것은 미국과의 협력관계가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미중 간에 갈등이 쌓이면 그런 협력·공조 체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이후 중국이 대북 영향력 회복을 위해 대북 제재의 고삐를 늦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중국 내 북한 노동자 철수 움직임이 멈췄고, 중국에 새로 파견되는 북한 노동자들이 목격되고 있다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보도는 허투루 볼 일이 아닌 듯하다. 미중 협력관계가 무너지면 결국 대북제재망 구멍이 더 커지고 북한 비핵화의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하면 중간에 끼인 우리 정부는 정책 방향을 정하기가 곤혹스러울 수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은커녕 현상유지도 기대하기 어렵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과의 공조를 튼튼히 하면서 이웃 국가이자 거대 시장인 중국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창의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이달 말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은 다시 못 만날 기회다. 그 기회를 살려 나가려면 미중 갈등이 북한 비핵화 영역까지 넘어오지 못하게 외교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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