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폐비닐 등 정상수거하기로 했다지만 사각지대 여전
자구책 마련 움직임도…'비닐 과대포장 금지' 청원 잇달아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황재하 기자 = "글쎄요 뭐, 정부가 합의했다는 건 대형 수거 업체고 자기들하고는 합의한 적이 없다고 안 가져간다는데 저희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이달 1일부터 시작된 재활용품 수거 업체의 폐비닐 등 수거 중단으로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관리소장 황모씨는 초등학생 키만 한 마대자루가 겹겹이 쌓여있는 쓰레기장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매주 수요일마다 재활용 수거 업체가 쓰레기를 가져가는데 이번에는 비닐만 쏙 빼놓고 가는 바람에 임시방편으로 비닐만 커다란 자루에 담아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황 소장은 설명했다.
아직은 단지 내 공간이 있어서 비닐봉지만 따로 모아 보관할 수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 아파트 전체가 비닐봉지로 덮일 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재활용품 수거 업체가 거둬가지 않아 만들어진 폐비닐·스티로폼 '무덤'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종로구의 다른 아파트 단지도 전날 수거 업체가 다녀갔는지 쓰레기장이 텅 비어있었지만, 비닐과 스티로폼은 수북이 쌓여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이 아파트의 관리소 부장은 "비닐을 생산하는 양을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한데 정부는 업체들이 마음 놓고 만들 게 해놓고 이제서야 돈이 되네, 마네를 따져서 수거를 하네, 마네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혀를 찼다.
성동구의 대형 아파트 단지 안에 마련된 쓰레기장도 재활용품 수거일 다음 날인지라 깨끗한 편이었지만, 한쪽 편에는 비닐이 가득 담긴 봉투와 스티로폼 묶음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아파트 주민 최모(52·여)씨는 "냄새가 나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이렇게 길바닥에 쌓아놓는 게 당연히 보기에 좋지는 않다"며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비닐 쓰레기가 더 늘어날 텐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온종일 내리는 봄비에 대형 건물과 지하철역 입구 곳곳에는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우산 비닐 커버가 쌓이다 못해 길바닥 곳곳에 널브러져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이모(33)씨는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에 오늘은 괜히 비닐 커버에 손이 가지 않더라"며 "요새 비닐 대란이라며 말이 많던데 이것부터 사용을 줄여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물 관리인들은 대리석 바닥에 물기가 있으면 걸어 다니다 미끄러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 비닐 커버를 놔둘 수밖에 없다며 항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비닐과 스티로폼의 사용을 자제하는 등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직장인 김모(35·여)씨는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어서 택배로 음식을 많이 주문하는데 스티로폼을 내놓지 말라고 하니, 앞으로 스티로폼으로 포장돼 오는 냉동식품은 어지간하면 시켜먹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기업에서 비닐을 사용한 과대포장을 금지하거나, 일회용 비닐 용품을 사용할 때마다 돈을 내도록 세금을 매기자는 내용의 글이 줄짓고 있다.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포털사이트의 카페에서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비닐,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네이버 아이디 'dalk****'는 "비닐을 쓰레기 봉지에 넣어서 매립하면 몇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저 자신도 소비하는 쓰레기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생수병을 사먹던 것을 포기하고 집에 정수기를 설치했다"고 적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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