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 '이민자는 강간범' 비하 이어 근거없이 '성폭행 만연' 주장
'피난처 도시' 맹비난…투표사기 의혹도 재차 제기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권혜진 기자 = 지난 대선 당시 멕시코 출신 이민자를 강간범으로 비하해 논란을 일으켰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 불법 이민자들을 겨냥해 '강간'을 언급하는 발언을 했다.
자신이 '캐러밴 행렬'이라고 지칭했던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 사이에서 성폭행이 만연했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이다.
문제의 발언은 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세제 개편 성과를 홍보하려고 전용기 편으로 웨스트버지니아주(州) 화이트 설퍼 스프링스로 날아가서 가진 원탁 토론에서 나왔다.
자리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은 오른손으로 사전에 준비한 원고로 보이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들더니 "이것은 내가 한 말이 될 것이다. 약 2분 정도 걸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공중을 향해 휙 던져버렸다.
그러고선 두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이것은 지루하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말한 뒤 세제 개편 대신 원고에 없던 불법 이민 문제로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6월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열린 그의 대선 출마 선언을 언급하며 "기억하느냐? 모든 사람은 내가 터프하다고 했고, 나는 '강간'(rap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어제 이 여정(캐러밴 행렬을 지칭)이 시작된 곳에서 나온 얘기인데 여성들이 지금껏 아무도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강간을 당한다. 그들은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이민)법을 개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내뱉었던 '멕시코 이민자 강간범' 발언에 이어 또다시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 언론은 실제 캐러밴 행렬에서 성폭행이 만연한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논란의 발언을 내뱉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캐러번 행렬과 관련한 강간 보도는 없었으며 오히려 이들을 겨냥한 범죄행위에서 벗어나려는 이민자들의 고군분투에 관한 이야기만 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출생 시 시민권 자동 부여 제도 제한, 비자 추첨제 폐지 등 이민정책 강화도 촉구했다.
특히 이민 추첨제를 겨냥해 "이들 국가가 좋은 사람을 보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멕시코는 문제가 많은 사람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이들은 성폭행범이고 마약, 범죄를 가져오고 있다"며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으로 싸잡아 비난해 논란이 된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로 당시 멕시코 국민 여론이 급격히 동요하는 등 논란이 벌어졌지만 그는 이 기간 내내 자신의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발언과 관련해 아무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으며 더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폭스뉴스 등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몰려오고 있다"며 유입 차단을 강력히 촉구했던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 즉 캐러밴을 가리킨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단속을 제한하는 '피난처 도시'에 대한 비난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연방정부의 이민 담당 직원에게 협조하지 않는 사법당국을 "나쁜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규탄하고는 2015년 캘리포니아에서 불법 이민자의 총에 맞아 숨진 케이트 스타인리를 사례로 지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피난처 도시는 최악"이라며 "기본적으로 많은 나쁜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아주 나쁘다"고 맹비난했다.
이 과정에서 논란 소지가 있는 막말도 쏟아졌다. 그는 MS-13 갱단이 롱아일랜드 여러 구역을 장악하고 있다며 갱 조직원들을 '패디 왜건'(Paddy Wagon·범인 후송차라는 뜻)에 태워보내 이 마을들을 "해방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패디 왜건'의 '패디'는 과거 아일랜드 사람들이 많이 쓰는 이름인 '패트릭'에서 파생된 것이어서 아일랜드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멕시코 장벽 건설과 이민법 강화라는 자신의 공약이 얼마나 훌륭한지도 새삼 자랑했다.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2016년 대선 경선 때 주장한 투표 사기 의혹도 다시 끄집어냈다.
대통령 당선 뒤 "불법투표를 빼면 득표수도 승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같은 많은 곳에선 같은 사람이 여러 차례 투표한다"며 "사람들은 항상 '음모 이론'이라고 하지만 음모 이론이 아니다. 수십만 명이 그러고 있는데 주 정부가 기록을 보호하고 있어 (적발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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