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 키 200㎝ 제한 규정 신설되자 생존 걸린 '키 줄이기'
현장·팬들 거센 반발에 청와대 청원까지…KBL "국내선수 보호 위한 것"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9.2㎝입니다."
KBL 직원이 신중에 신중을 기해 잰 자신의 키를 통역을 통해 전해 들은 찰스 로드(KCC)는 긴장감이 풀린 듯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으고 엎드려 기도까지 한 로드는 주먹을 불끈 쥐고 오래 기쁨을 만끽했다.
6일 오후 2시 서울 신사동 KBL센터 교육장의 풍경은 한 편의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전주 KCC의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탈락으로 시즌을 마감한 로드는 이날 자신의 신장을 재측정하기 위해 KBL을 찾았다.
다음 시즌부터는 200㎝ 이하의 외국인 선수만 코트에 설 수 있다는 규정이 신설된 탓에 등록 신장 200.1㎝인 로드로서는 한국 무대에 계속 서기 위해선 키를 줄여야 했다.
로드의 신장 재측정을 앞두고 20명이 넘는 취재진이 이례적으로 몰려들었다.
교육장에 들어서 기자들을 보고 놀란 듯 웃음을 지은 로드는 신발과 양말을 차례로 벗고 '경건하게' 측정을 준비했다.
신체검사 때 10초면 잴 수 있는 키지만 선수의 앞날이 걸린 중요한 측정이었기 때문에 과정은 엄격하고 신중했다.
KBL 직원은 "바닥에 그려진 발 모양에 맞춰 서고 무릎과 허리를 쫙 펴야 한다. 정상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측정 불협조로 간주한다"며 "2시 측정 후 선수가 원하면 4시와 6시에 더 측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은 로드의 자세가 구부정하다며 여러 차례 교정을 요구했고 로드는 "최대한 쫙 편 것"이라고 항변했다. 결국 로드가 한 차례 측정기 아래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 직원이 직접 몸을 붙잡아 고정시킨 후에야 측정이 이뤄졌다.
처음 측정을 시작한 후부터 199.2㎝라는 수치가 발표되기까지 5분 넘게 소요됐다.
'KBL 커트라인'을 통과한 로드는 "선수 생활 전체에서 가장 떨리는 키재기였다"며 "긴장을 많이 했는데 두 번째 고향과도 같은 한국에서 다시 뛸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농구선수에게 신장은 큰 무기인데, 키가 줄었다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호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장신 200㎝ 이하, 단신 186㎝ 이하인 KBL의 외국인 선수 신장 제한 규정은 개정 직후부터 논란이 됐다.
안 그래도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프로농구의 재미를 반감시킬 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장신 선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국내 대표선수들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대착오적인 규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여러 시즌 KBL에서 활약해온 선수들이 키 때문에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팬들이나 현장의 반발은 거세졌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마저 등장했다.
이성훈 KBL 사무총장은 이날 로드의 신장 측정 이후 기자들 앞에 나와 규정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이 총장은 "가장 큰 목적은 국내선수 보호"라며 "구단의 유불리를 떠나 전체 리그의 경쟁력과 품질을 우선시하다 보니 현장의 의견을 다 수용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규정이 한국 농구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비판에 이 총장은 "신발을 벗고 잰 2m는 결코 작은 신장이 아니다"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 총장은 또 "KBL 출범 이래 22시즌 중 15시즌에 신장제한을 실시했는데 공교롭게도 신장제한이 폐지된 시기에 경기 속도와 득점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신장제한이 리그의 품질에도 긍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장제한이 없던 2009∼2015시즌은 외국인 선수의 출전가능 쿼터가 4쿼터(현재는 6쿼터)로 가장 적었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KBL의 설명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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