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김해는 행정 중심지·군사요충지였다"

입력 2018-04-06 17:59  

"고려시대 김해는 행정 중심지·군사요충지였다"
김해시·한국중세사학회, 시청서 '중세도시 金州, 김해의 재발견' 학술회의




(김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고려시대 경남 김해시는 행정 중심지이자 군사요충지였다."
김해시와 한국중세사학회가 6일 오후 김해문화원에서 연 학술회의에서 고려시대 김해의 모습이 새롭게 조명됐다.
'중세도시 金州, 김해의 재발견'을 주제로 연 학술회의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열렸다.
고려 성종 때(995년) '금주안동도호부'로 지칭된 김해는 고려가 전국에 설치한 4개 도호부 중 하나로 위세를 떨쳤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한국중세사학회장인 부산대 김기섭 교수는 "김해는 창원·마산·진해·함안 등 주변 지역을 부속 현(縣)으로 거느리고 통제한 지역 중심지"라며 "고려 후기에는 일본 정벌의 전진기지로 여몽연합군이 주둔한 군사요충지"라고 밝혔다.
그는 또 "고려 말 왜구 침략을 방어하는 군사적 전략지역으로 김해부사 박위가 축조한 분산성이 산 정상부에 성곽으로 남아 있다"며 강조했다.
김해 '장군차' 명칭에 대한 재미있는 유래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여몽연합군을 격려하기 위해 김해에 들렀던 충렬왕이 금강사에서 제공한 차를 마시고 훌륭한 맛과 향에 감동해 '장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오늘날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김해의 도로 바탕은 이미 고려시대에 확립됐다는 내용도 눈길을 끌었다.
고려 때 김해가 중심이 돼 밀양, 양산, 울주, 기장, 동래, 웅천, 창원 등 지역을 사방으로 연결하는 교통로를 금주도(金州道)로 칭했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choi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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