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갈등 장기화에 사지 내몰리는 협력업체·영업직

입력 2018-04-08 07:02  

한국GM 갈등 장기화에 사지 내몰리는 협력업체·영업직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윤보람 기자 = "그야말로 죽을 지경입니다. 차가 잘 팔릴 때는 한 식구라고 얘기해놓고 지금은 생계가 어려워진 직원들을 나 몰라라 하는 행태에 배신감마저 들어요."
한국GM 사태가 두 달 가까이 장기화하면서 내수 판매가 급감하자 본사 공장뿐 아니라 협력업체와 영업 일선의 피해가 극심해지고 있다.
한국GM 노사가 자구안을 놓고 기 싸움을 하며 대립하는 사이, 그동안 회사가 성장하는 데 기여한 협력업체들과 영업사원들은 손쓸 도리 없이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다.

◇ 생산량 급감·자금난에 줄도산 위기 협력업체들
8일 업계에 따르면 철수설이 돌 때부터 서서히 줄기 시작한 한국GM의 내수 판매는 지난 2월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2월에는 총 5천804대를 팔아 전년 동기 대비 48.3% 줄었고, 3월 판매량은 1년 전보다 57.6%나 감소한 6천272대에 그쳐 국내 완성차업체 5개사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GM이 내수 판매 순위에서 업계 꼴찌로 처진 것은 2002년 창사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GM 부품협력업체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판매 부진으로 납품물량이 급감하자 1차 협력사의 공장 가동률은 최근 50∼70%대로 하락했다.
올해 누적 매출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평균 20% 가량 감소했다.
총 301개 한국GM 1차 협력업체 가운데 한국GM 의존율이 50%를 넘는 업체는 154개에 이르고, 한국GM에만 100% 납품하는 업체도 86개나 된다.
한국GM에 자동차 내장재를 납품하는 인천 부평의 한 1차 협력업체는 지난달 매출이 작년 같은 달보다 30% 넘게 줄자 90명이던 직원을 70명 남짓으로 감축했다.
이 업체와 연결된 2차 협력업체 50여곳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협력사들의 유동성 위기는 더 심각하다.
최근 금융권에서 한국GM과 거래하는 부품 협력업체들을 '중점 관리대상' 업체로 분류하고 대출한도 관리, 여신 축소 등에 나서면서 특히 영세한 2·3차 협력업체들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일례로 한국GM 협력사들은 납품 대금으로 받은 60일 만기 전자어음을 3%대 금리로 할인해(외상채권담보대출) 운영 자금으로 쓰는데, 최근 은행들이 어음 할인을 거부하고 있다.
문승 비상대책위원장은 "1차 협력사들이 2·3차 업체에 발행한 60일짜리 어음마저 할인이 거부되면 2·3차 업체들이 부도가 나고, 부품공급망 붕괴로 1차 업체들도 연쇄부도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위원장은 "한국GM 노사는 조속한 시일 안에 모든 협상을 마무리하고 부족한 부분을 차츰 보완해달라"면서 "정부도 실사 작업을 신속하게 끝내 협력업체들의 줄도산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사들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의 간담회에서 한국GM의 조기 경영정상화를 위해 정부가 노력해달라고 건의했으며, 그때까지 협력사들이 생존 기반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금융 문제를 해소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간담회에서 제기된 애로사항을 토대로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지원방안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 판매망 붕괴·생계위기 처한 영업직들
서울 지역의 한 쉐보레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박모(47) 이사는 요즘 출근을 해도 일을 하는 것 같지 않다.
예전에는 적어도 하루 3∼4개 팀의 고객이 꾸준히 대리점을 찾았지만, 최근 들어선 단 한 명도 방문하지 않는 날이 다반사다.
박 이사는 "철수설 때문에 애프터서비스(AS)나 단종 후 중고차 가격 하락 등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고객이 차를 보러 오겠는가"라며 "품질을 떠나서 한국GM과 쉐보레 브랜드 자체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나빠진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판매가 안 되니 한 달 운영 자금 1천만∼1천500만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대리점들은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았다.
한국GM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쉐보레 대리점은 284개로 작년 4월과 비교해 16개 줄었다.
고영진 전국 한국GM 대리점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리점이 유지되려면 전체 판매량이 1만대는 넘어야 한다"며 "지금처럼 한 달에 5천∼6천대를 파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남아있는 280여개 대리점들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 위원장은 "5∼8년 정도 일한 숙련된 직원들이 다 떠난 마당이라 회사가 나중에 정상화된다 해도 새로운 직원을 고용해 적응시키는 데 최소 6개월이 걸리는 등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업사원 이탈은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달 기준 한국GM 영업사원은 총 2천545명으로 1년 전보다 1천명 가까이 감소했다.
100% 대리점 방식으로 운영되는 한국GM 특성상 영업사원들은 기본급이 전혀 없으며 차를 팔아야만 성과급 형태로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철수설이 지속하고 판매가 크게 위축되면서 영업직의 평균 임금은 반 토막 났고, 이런 상황이 몇 달째 계속되자 1천여명의 직원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다른 일터로 떠났다.
박 이사는 "생산직 근로자는 희망퇴직 기회라도 있지만 영업사원은 못 버티면 아무 보상 없이 그냥 떠나야 한다"며 "10년 넘게 쉐보레 차를 판매한 저도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차가 지금처럼 안 팔린다면 더는 버틸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김환영 한국GM 판매노조 위원장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조만간 영업사원이 2천명 아래로까지 줄 것"이라며 "향후 회사가 정상화돼 이를 원상태로 회복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년 수준으로 1년에 내수 15만대를 판매하려면 최소 3천명의 영업사원이 필요한데, 통상 신입사원 1명을 교육하는 데 드는 비용이 600만원정도임을 고려하면 1천명을 충원하는 데 총 60억원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미래 발생 비용을 끌어와 생계지원비로 지급해 현재 영업사원들을 지켜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직원을 사지로 내모는 대리점을 점차 직영점으로 전환하는 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shk999@yna.co.kr, bry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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