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총선 돌입…반EU '스트롱맨' 총리 4선 눈앞

입력 2018-04-08 13:00  

헝가리 총선 돌입…반EU '스트롱맨' 총리 4선 눈앞
반난민·민족주의 앞세워 측근 비리·언론 장악 논란 잠재워
동유럽 우파 민족주의 확산에 EU 분열 우려도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유럽 정치 지형도의 또 다른 풍향계가 될 헝가리 총선이 8일(현지시간) 오전 6시 수도 부다페스트를 비롯한 전역에서 시작됐다.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제로 모두 199명의 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는 여당 피데스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피데스와 위성 정당인 기독민주국민당(KDNP) 연합이 개헌 의석인 133석을 확보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3월에 실시된 7번의 여론조사에서 피데스와 KDNP 연합은 41∼54%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피데스는 2014년 선거 때 44.87%의 지지율로 133석을 확보했다가 보궐선거에서 2석을 잃고 개헌 의석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여당이 개헌 가능한 3분의 2석을 확보하게 된다면 3연임을 하게 되는 빅토르 오르반(54) 총리는 반 난민, 민족주의 정책을 강화화면서 정국 주도권의 고삐를 쥐게 될 전망이다.



오르반 총리는 35세였던 1998년 피데스의 총선 승리를 이끌며 유럽 최연소 총리가 돼 4년간 정부를 이끌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기면 그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유럽에서 4선 총리가 된다.
1988년 부다페스트 반체제 대학생들이 조직한 청년민주동맹의 창립회원인 오르반 총리는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다.
1989년 헝가리의 반소련 봉기 때 처형된 임레 나지 전 총리의 시신 이장식에서 소련군 철군, 다당제 총선을 요구했던 그의 연설은 빅토르라는 청년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사회주의에 염증을 느낀 중산층 표를 얻지 못하면 집권이 어렵다는 판단에 그는 피데스를 중도 우파 정당으로 변신시켰고 결국 사회당을 누르고 2010년 이후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2015년 유럽의 난민사태는 오르반 총리와 여당 피데스를 오른쪽으로 더 돌려놓았다. 오르반 총리는 EU의 난민 분산 수용 정책을 거부하고 난민을 '독(毒)'이라고 부르며 세르비아 국경 지대에 레이저 철조망을 설치했다.
반인도적이라는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난민 신청자들의 거주 자유를 제한하면서 송환 구역에 집단 수용했다.
측근들이 주요 언론사를 인수하거나 요직에 들어가고,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의 자금줄을 옥죄면서 오르반 총리는 '빅테이터(빅토르와 독재자를 뜻하는 딕테이터의 합성어)'라는 별명도 붙었다.
총선을 앞두고 사위 이슈트반 티보르가 연루된 부패 스캔들도 여당 지지율을 크게 흔들지 못했다.
헝가리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2010년 집권한 오르반 정부는 경제 주권을 외치며 2013년 8월 빚을 조기 청산했다.
이후 2∼4%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유지되고 있고 난민사태 위기감이 확산하면서 단단한 지지층을 확보했다.



오르반 총리가 재집권하게 되면 난민사태로 불거졌던 EU와의 긴장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는 지난해 사법부를 사실상 정부 아래 둔 폴란드의 사법 개혁 조치를 EU가 문제 삼으며 폴란드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초강수를 꺼내자 폴란드를 적극적으로 두둔하며 EU가 자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폴란드 정치권의 실세인 법과 정의당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당수는 6일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0년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 사고 희생자 추모비 제막식에서 "오르반과 피데스 없는 유럽의 미래는 생각할 수 없다"며 결속을 과시했다.
난민 문제로 불거지기는 했지만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EU가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 진영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최근 EU 내에서 비셰그라드 그룹(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발언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해왔다.
헝가리 등 동유럽 8개국은 2004년 5월 EU에 가입했다. 그동안 옛 소련의 그늘을 벗어나려고 EU에 의존했던 이들은 10여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EU로부터 독자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EU는 이들 국가가 폴란드처럼 규약에 어긋나는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의결권을 박탈하는 리스본 조약을 발동해도 모든 회원국이 찬성해야 하는데 동유럽 국가들이 서로 방패막이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기사에서 사회주의 체제 붕괴 후 EU에 합류한 동유럽 국가들이 EU 가치에 반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10여 년 만에 새로운 분열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3연임, 4선 총리를 눈앞에 둔 오르반 총리의 다음 목표는 EU 내에서 동유럽의 독자 세력화 구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작년 이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가 휩쓴 유럽의 정치 지형은 동유럽의 우파 민족주의까지 가세하면서 더 복잡해질 전망이다.
mino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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