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난민·민족주의로 부패·독재 비판 잠재운 오르반

입력 2018-04-09 08:27   수정 2018-04-09 08:47

반난민·민족주의로 부패·독재 비판 잠재운 오르반

'빅테이터' '리틀 푸틴' 별명…경제 안정·야당 분열로 총선 승리
개헌 의석 확보로 장기 집권 길 열려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8일(현지시간) 총선 승리가 확정되자 여당 피데스 당사 밖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이겼다. 결정적인 승리다. 미래에 우리는 조국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이어 유럽에서 4선 총리가 될 그는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총선 기간에 불거진 사위 등 측근 부패 논란과 독재자라는 비판도 잠재우게 됐다.


오르반 총리는 35세였던 1998년 피데스의 총선 승리를 이끌며 유럽 최연소 총리로 4년간 정부를 이끌었다.
사회민주당에 패해 정권을 내줬다가 2010년 재집권한 뒤에는 전체 의원 수를 386명에서 199명으로 줄이고 여당에 유리하게 결선 투표제를 없앴다.
1988년 부다페스트 반체제 대학생들이 조직한 청년민주동맹의 창립회원이었던 그는 재집권 때부터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해갔다.
결선 투표제 폐지로 야당 지지자들의 결속이 약해지면서 피데스는 2014년 총선에서는 개헌 가능 최소 의석인 133석을 확보했다.
보궐선거로 2곳을 잃으면서 개헌 의석을 지키는 데 실패했지만 이번에 다시 134석을 확보하면서 개헌을 시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작년 11월 전당대회 때 그는 만장일치로 당 의장에 선출되면서 당내 파워를 과시했다.
주요 언론사들을 측근들에게 넘기면서 야당의 목소리를 눌러버리고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헝가리계 미국인 조지 소로스를 적으로 규정하는 등 권력을 비민주적으로 휘두른다는 비판은 이번 선거 결과로 완전히 묻히게 됐다.

총선 결과가 나온 직후 제1야당인 요빅의 가보르 보나 당수가 사퇴 의사를 밝혔고 오히려 의석이 줄어든 좌파 사회민주당 대표도 대표직을 내려놓는 등 정치적으로 대항할 인물들도 사라졌다.




오르반 총리가 '빅테이터'(빅토르와 독재자를 뜻하는 딕테이터의 합성어), '리틀 푸틴'이라는 외부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자신감의 배경에는 경제적 안정이 깔려 있다. 헝가리는 2010년 이후 줄곧 2∼4%의 경제 성장률을 유지해왔고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도 EU 평균보다 높다.
선거 때마다 외부의 적을 규정해 유권자들을 끌어모으는 전략도 그의 장기 집권에 크게 기여했다.
헝가리가 2008년 금융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을 빌리게 됐을 때는 2010년 집권 후 3년 만에 빚을 청산하면서 IMF에 사무실을 철수하라고 요구하는 등 IMF를 적으로 돌렸다.
당시 경제 회복 기조는 2014년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는 데 바탕이 됐다.
올해 총선에서는 난민 문제를 앞세워 '헝가리 퍼스트'를 외치며 표심을 자극했다. 난민이 유럽의 기독교 문화를 훼손한다며 죽었던 민족주의를 되살려냈다.
개헌 의석을 확보한 4선 총리가 되는 그가 독일, 프랑스 등에 맞서 EU 내에서 지분 확대를 요구하게 되면 2004년 동유럽 국가들의 EU 가입 이후 유럽이 다시 동서로 대립하는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mino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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