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극 만드는 이란 작가 낫심 "삶에도 리허설이 없잖아요"

입력 2018-04-09 10:46   수정 2018-04-09 10:56

즉흥극 만드는 이란 작가 낫심 "삶에도 리허설이 없잖아요"
10일부터 즉흥극 '낫심' 공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왜 연극에 리허설이 없느냐고요? 전 오히려 수천 년 동안 리허설이라는 형태를 왜 반복하는지가 궁금해요. 삶에도 리허설이 없잖아요."
이란 출신 작가 낫심 술리만푸어(38)의 작품은 공연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는 공연 직전에야 대본을 받는다. 당연히 사전 연습도 없고 연출도 없다. 공연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공연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예측할 수 없는 게 낫심 작품의 특징이다.
10일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신작 '낫심'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낫심을 만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즉흥극 형식의 공연은 낫심의 개인적 이력에서 비롯됐다. 징병제 국가인 이란에서 병역을 거부한 그는 여권이 나오지 않아 외국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낫심은 외국에 갈 수 없게 되자 작품으로 전 세계의 배우와 관객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해 영어로 작품을 썼다. 그렇게 쓴 작품이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하얀 토끼, 빨간 토끼'였다. 이 작품은 지난해 국내에서도 초연돼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다.
낫심은 "병역 문제 때문에 해외 투어를 갈 수 없게 되면서 연극의 패러다임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리허설 없는 공연을 생각해 냈다"면서 "그게 '하얀 토끼, 빨간 토끼'였고 그 경험을 즐겼다"고 말했다.
낫심은 2013년 한쪽 눈이 거의 실명됐다는 진단을 받아 병역의무에서 벗어났다. 이 사연은 후속작 '눈먼 햄릿'(Blind Hamlet)에 담겼고 2015년 그는 이란을 떠나 독일 베를린에 정착해 활동하고 있다. 이란도 오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란에서는 그의 작품이 공연된 적은 없다.
이번에 공연하는 '낫심'도 즉흥극이다. 이란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21일의 공연 기간 매일 새로운 배우가 연습이나 리허설 없이 무대에 선다. 2막으로 구성돼 있으며 2막에는 낫심도 직접 출연해 무대에 선다.
"언어에 대한 작품입니다. 언어가 어떻게 우리를 분리하고 또 한데 묶는지를 탐색하는 작품이죠. 예를 들어 영어는 제 모국어가 아니지만 저는 파르시어(이란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표현하고 통역을 통해 한국어로 전달하죠. 이건 동시대적인 현상이죠. 저도 출연하기는 하지만 저는 연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무대에 등장한다는 표현 대신 공연 주변에 머물러 있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극작가가 무대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얀 토끼, 빨간 토끼'가 어떤 실험에 대한 가능성을 시도했던 작품이라면 이번에는 그 시도가 좀 더 커졌습니다. 같은 아이디어의 형식이지만 공연 자체로는 더 복합적인 형태죠."
그의 작품들은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으로 화제가 된다. 지난해 '하얀 토끼, 빨간 토끼' 초연에는 손숙, 이호재, 예수정, 하성광, 손상규 등이 출연했다.
이번 '낫심' 공연에도 고수희부터 구교환, 권해효, 김꽃비, 김선영, 김소진, 나경민, 류덕환, 문소리, 박해수, 손상규, 오만석, 우미화, 유준상, 이석준, 이자람, 이화룡, 전박찬, 전석호, 진선규, 한예리까지 21명의 배우가 대본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짜리 공연을 수락했다. 일부 배우의 공연은 티켓 판매가 시작된 지 수 분 만에 매진됐다는 후문이다.



"처음부터 캐스팅이 잘 된 건 아니었어요. '하얀 토끼, 빨간 토끼' 공연 때는 관객 9명이 무대 위로 나와야 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관객이 8명밖에 없었던 적도 있죠. 이렇게 호응이 좋은 게 처음은 아니에요. 브로드웨이 공연 때에는 30분 만에 제 휴대전화에 2천 개의 메시지가 오기도 했어요. 배우들은 준비가 필요한 사람들이고 리허설 없이 공연하는 게 힘든데도 제 작품에 출연해주는 면에서 '이타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낫심은 이제 활동에 제약이 없어졌는데도 즉흥극 형식을 고집하고 있다. 이유를 묻자 작가는 "수천 년 동안 왜 리허설 형태를 반복하는지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이렇게 인터뷰할 때도 리허설 없이 만남이 이뤄지잖아요. 리허설이 없어도 행복하게 즐겁게 일할 수 있어요. 삶도 리허설이 없다는 점과 제 연극은 굉장히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연약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배우는 아름다운 독백을 외워서 자신감 있게 공연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죠. 실제 삶에서는 실수할 수도 있고 웃고 당황할 수도 있죠.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직 하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더 있다"면서 앞으로도 즉흥극 형식의 작업을 계속할 것 같다고 말했다.
"'쿡북'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제 대본의 결과물로 어떤 공연이 될지 모르는 것처럼 레시피와 요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 공연 자체가 하나의 요리를 하는 프로젝트죠. 아마존의 오디오북 사이트 '오더블'과는 오디오북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이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볼까 해요."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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