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건 헤이트 스피치 판정 불구, 발신자 실명 공개 못 해
피해자의 소송 지원 가능하도록 관련 법 개정 요청키로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혐한시위를 포함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억제 조례를 시행한 오사카(大阪)시가 헤이트 스피치 피해자의 소송을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오사카 시는 조례에 따라 현재까지 인터넷 동영상 4건을 헤이트 스피치로 판단했지만, 실명 없이 게재자의 닉네임과 동영상 내용을 공표하는 데 그쳤다. 동영상 게재자 개인의 신원을 특정하지 못해서다.
2016년 시행된 조례는 피해자의 신청이 있으면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심사회를 열어 헤이트 스피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해당한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스피치 발신자의 이름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헤이트 스피치 판정을 받은 4건은 모두 재일 한국·조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자는 발언을 거리에서 반복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다.
그러나 동영상 투고자의 실명이 공개된 적은 없다. 시 당국은 사이트 운영자에게 투고자가 스스로 이름을 밝히도록 중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 없는데다 사이트 운영자가 중재요청을 거부했던 때문이다..
심사위원회는 사이트 운영회사에 투고자의 실명제공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통신비밀을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에 위배돼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례의 핵심 내용인 헤이트 스피치 발신자 실명공개가 사실상 어려워 진 것이다.
시 당국은 이에 따라 특정 개인 등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발신자에게 배상을 요구하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발신자 실명을 자치단체에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키로 했다. 사이트 운영회사에 발신자 정보 보관의무를 부과하는 내용도 반영해 주도록 요청할 방침이다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오사카 시장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에서 4월 중 정부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요망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요시무라 시장은 2016년 시행된 헤이트 스피치 대책법에 정부가 지자체를 지원하도록 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법에 근거가 있는 만큼 정부가 확실히 지원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헤이트 스피치 등이 외상후스트레스(PTSD) 등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대한 생각에 일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소가베 마사히로(?我部?裕) 교토(京都)대학 교수(헌법)는 "피해자 지원이라는 관점에서 법에 특례를 요구하는 오사카시의 요청을 위헌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헤이트 스피치를 허용하지 않는 오사카회"의 문공휘(文公輝) 사무국장도 "피해자가 법적 구제를 받기 쉽도록 하는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오사카시의 계획을 높이 평가했다.
'오사카회'는 월 1회씩 문제가 되는 표현을 변호사 등과 협의해 지금까지 21건의 시정요청을 시 당국에 요청했다. 문공휘 사무국장은 "최근 10년 정도 인터넷 공간이나 거리에서 발생하고 있는 헤이트 스피치는 정상이 아니다"라면서 "오사카시가 제기한 문제에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반면 법 개정에 소극적인 의견도 있다. 정치권력에 표현내용과 통신비밀에 관한 판단을 맡기면 자의적으로 남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오사카시의 조례 제정에 관여했던 모리 도오루(毛利透) 교토대학 교수는 "헤이트 스피치를 줄이려는 건 정당한 정책이지만 규제는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규제의 긍정적 측면 뿐 아니라 부작용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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