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정장 7벌·코트 1벌' 받은 혐의…정치권 일각 "망신주기" 지적
유일한 직접수수 금품, 공소시효 징검다리 역할…검찰-MB 치열하게 다툴 듯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혐의사실 중 법조계의 시선을 끄는 대목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총 1천230만원 어치의 옷을 선물했다는 부분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이 전 회장이 유명 정장 디자이너를 삼청동 공관에 데려와 이 전 대통령에게 정장 5벌과 코트 1벌, 이상주 변호사 등 사위 2명에게 정장 1벌씩을 맞춰줬다고 구속영장에 이어 공소장에도 적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혐의가 망신주려는 의도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검찰과 변호인단은 중요한 쟁점으로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11일 "맞춤 양복은 이 전 대통령이 유일하게 직접 수수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뇌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팔성 전 회장이 2007년 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12차례에 걸쳐 건넨 현금 뇌물은 모두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나 부인 김윤옥 여사, 사위 이상주 변호사가 수령했다. 이 전 대통령이 관련 혐의를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러나 맞춤 양복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검찰이 맞춤 양복에 의미를 두는 또 다른 이유는 이 혐의가 여타 금품거래의 성격까지 규정해 준다는 점이다. 옷을 맞춘 시점을 전후해 이 전 회장이 건넨 억대의 현금 역시 가족이 아닌 이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제공한 금품이라는 점을 정황상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양복을 중요한 쟁점으로 본다.
이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 이팔성 전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금품까지 뇌물로 처벌하려고 검찰이 양복 수수를 공소사실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는 게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12월 19일 당선 전에 16억5천만원을 건넸고, 2008년 1월 당선인 신분이었을 때 양복을, 취임 이후인 2008년 4월에 3억원을 건넸다고 검찰은 파악했다.
변호인단은 설령 당선 전에 16억5천만원을 받았다고 해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뇌물죄는 공무원이나 공무원이 될 사람에게 적용되는데, 대선 후보 시절 받은 금품은 뇌물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반면 이팔성 전 회장이 대선 전부터 당선 후, 취임 이후까지 지속해서 뇌물을 건넸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시점상 대통령 당선 이후이면서 취임 전에 일어난 양복 수수는 징검다리처럼 당선 전과 취임 후의 금품거래 혐의를 이어준다.
이런 구조를 흔들기 위해 변호인단은 양복 역시 뇌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양복 수수가 인정되지 않으면 검찰이 판단한 공소시효도 달라질 수 있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이 건넨 19억5천만원과 양복에 뇌물과 함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는 7년이지만, 2007년 12월 20일 형사소송법 개정 이전의 범행에 대해선 5년이다.
검찰은 19억5천만원 중 마지막 3억원이 건네진 2008년 4월을 기준으로 시효를 계산했다. 이 경우 공소시효는 7년이 적용되고, 시효가 중단되는 대통령 임기를 더하면 2020년 4월까지 시효가 이어진다.
그런데 징검다리처럼 당선 전과 취임 후의 혐의를 이어주는 양복 수수가 인정되지 않으면 시효 계산이 달라진다. 당선 전과 취임 후의 금품거래 혐의가 따로 떨어지면 2008년 4월에 오갔다는 3억원만 공소시효가 살아남아 처벌 대상이 많이 줄어든다.
당선 전에 오갔다는 16억5천만원은 공소시효 5년이 적용돼 이미 2017년 12월에 시효가 끝나는 셈이다. 이런 시효 계산은 변호인단의 논리이기도 하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2007년에 오간 금품까지 처벌 대상으로 포함해야 하고 변호인은 공소시효가 지난 돈거래라고 보기 때문에 양복 수수를 둘러싼 사실관계 등을 놓고 양측이 치열하게 다툴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bang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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