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서강대 교수 '풍석 서유구 산문 연구'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후기 문신인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는 방대한 저작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로 잘 알려졌다.
113권, 52책으로 구성된 임원경제지에는 농업, 목축, 어업, 양잠, 상업 등 산업에 관한 정보는 물론 선비가 일상에서 알아야 할 각종 지식이 집대성됐다.
그는 명문가의 자제로, 20대에 급제해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냈다. 할아버지인 서명응도 대제학으로 활동했고, 아버지 서호수는 이조판서로 일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서유구를 농업에 관심을 보인 농학자, 예술에 조예가 있는 장서가이자 경화사족(京華士族·한양과 인근에 거주하는 사족), 이용후생을 추구한 실학자로 조명해 왔다.
김대중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신간 '풍석 서유구 산문 연구'에서 "1970년대 내재적 발전론의 주요 증인이었던 '농학자 서유구'는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경화사족이자 정보 조직자이자 이용후생학자로 각광을 받았다"며 "서유구 연구사의 흐름은 시대 변화에 따른 학계의 동향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즉 현대 학자들이 서유구라는 인물이 지닌 복잡한 면모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도식화해 사상의 본질을 살피지 못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교양을 통한 자기 형성, 사실의 추구, 생활 세계에의 밀착적 접근 등 세 가지 관점에서 서유구가 쓴 산문을 검토하고 당대의 다른 학자들과 비교해 서유구 사상의 특징을 뽑아낸다.
저자는 "서유구는 당시 일각의 지식인들처럼 양반의 사치 행각과 무위도식, 과도한 빈부 격차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대부도 자립적 삶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서유구는 자연에 대한 독특한 철학관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서유구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 통찰을 시도했고, 자연 속에서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꾀했다고 강조한다.
서유구의 사상은 다산 정약용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두 사람은 문제의식을 공유했지만, 학문적으로는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유구는 인간과 자연이 근원적으로 이어져 있고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봤지만, 정약용은 자연 속에서 인간이 갖는 독자성에 주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약용과의 대비 속에서 드러나는 서유구의 한계로 기층민이나 민중에 대한 관심 부족을 지적한다. 경화사족이라는 계층적 테두리 안에 머물러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유구는 조선 후기 사대부가 나아갈 수 있는 몇 가지 방향의 하나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며 "그는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기획하지는 않았고, 향촌이라는 생활 공간 속에서 개인적 실천을 하는 삶을 모색했다"고 평가한다.
돌베개. 544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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