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정 권고에도 여전…지자체 "용어만 바꾸는 조례 개정 어려워"
(전국종합=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게기(揭記), 계리(計理), 일부인(日附印), 지참(遲參).
한자의 뜻을 안다고 해도 얼핏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식 용어들이다.
법제처나 행정안전부는 일본식 표현이나 어려운 한자어, 어문 규범에 맞지 않게 사용된 조례나 규칙의 용어 개정을 권장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조례를 개정할 때 용어 순화를 검토하겠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서다.
사전을 뒤져보며 조례를 읽어야 하는 주민들은 물론 공무원들조차 그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해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법제처 등에 따르면 '게기하다'는 양이나 범위 따위를 제한해 정한다는 뜻의 '규정하다'와 의미가 같은 일본식 용어다. 조례에서는 '제1호에 게기된 자 이외의 회계관계공무원' 식으로 쓰이고 있다.
충남 계룡시·청양군과 경남 사천시, 서울 서초구가 최근 조례를 개정해 '게기'를 '규정'으로 순화했다.
그러나 아직도 경기 의정부시, 강원 양양군 등 47개 지자체가 '게기'라는 용어를 조례나 규칙에 그대로 쓰고 있다.
'계리'는 회계처리를 뜻하는 일본식 용어인데 경기도와 경기 포천시 등은 조례를 일괄 개정, 회계처리로 바꿨지만 '충북도 금고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 등 전국의 697개 조례·규칙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서류에 그날그날의 날짜를 넣어 찍는 도장을 말하는 '일부인'도 용어 순화 대상이다.
그러나 '입찰서에는 일부인을 날인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조례나 규칙에 들어가 있다.
정부는 '날짜 도장'으로 용어를 변경하라고 주문하고 있지만, 서울의 10개 구와 충북 음성군은 여전히 '일부인'이라는 용어가 쓰인 조례를 바꾸지 않고 있다.
지각을 뜻하는 '지참'은 전국 지자체의 공무원 복무조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고, 공과금 등을 관계 기관에 낸다는 뜻의 '불입'도 납입으로 대체해야 하지만 여전히 쓰이고 있다.
사람을 상대적으로 낮게 일컫는 '자(者)'도 조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법령에 담기 어려운 한자어와 어색한 일본식 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치자는 다양한 노력이 이어져 왔지만 지자체는 조례·규칙 개정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정부는 매년 지자체 자치법규 정비 계획을 점검하고 있지만 쉬운 용어로 조례를 개정하는 연간 건수는 지자체별로 평균 4∼5건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에 소극적인 지자체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주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는 것은 누구나 반길만한 일로 조례를 한꺼번에 고치는 일괄 개정을 해도 되는데 무슨 사정인지 늑장을 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단순히 용어만 순화하자고 조례 개정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며 "상위법의 내용을 반영하는 등 조례 개정이 필요할 때 일본식 용어나 어휘도 함께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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