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유·협박·해고…직장내 성폭력 2차가해 광범위하게 이뤄져"

입력 2018-04-12 14:30  

"회유·협박·해고…직장내 성폭력 2차가해 광범위하게 이뤄져"
"사후관리·감독 의무화해야"…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집담회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1. 회식 뒤 성폭력을 당한 은행 직원 A씨는 이를 경찰에 고소한 뒤 상사들로부터 회유와 압박을 받았다. 가해자와 친한 상사가 사건의 목격자이자 조력자에게 왜 증언했느냐며 압박하고, 피해자에게는 위증 진술서를 쓰라고 협박했다. 고소가 1차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자 불기소 처분을 받은 대기발령 중이던 가해자는 복직하고 도리어 피해자가 1년 넘게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다.
#2. 공기업 B사에서는 해외 교육 중 상사가 부하 여직원을 성희롱한 사건이 발생한 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해임됐다. 사측은 화해하면 둘 다 복귀시켜주겠다며 회유하는 한편, 외부에 절대 발설하지 말라면서 압박했다.
#3. 공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C씨에게 상사는 지속적으로 신체 접촉을 하면서 성적 제안을 했다. C씨가 제안에 응하지 않자 상사는 피해자의 계약연장 평가에서 부정적으로 보고했다. 그간 관행적으로 정규직 전환이 되어왔던 업무였고, 회사에서도 구두로 계약연장을 이야기해왔지만, C씨는 결국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
12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피해와 생계 사이, 직장 내 성폭력을 말하다' 집담회에서 제시된 직장 내 성폭력 2차 피해 사례들이다.
여성민우회의 이가희 활동가는 성희롱 문제 제기 후 사직 종용, 조직적 따돌림, 견책 징계 등 광범위한 불이익조치를 받은 르노삼성자동차 직원이 가해자와 회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작년 12월 대법원에서 불이익조치의 불법성을 인정받은 사례를 제시하면서 다른 기업에서도 이와 유사한 불리한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에 따르면 여성민우회에 들어온 직장 내 성희롱 상담 중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조치 관련 상담이 2016년 47.2%, 2017년 41.8%를 각각 차지했다.
이 씨는 "상담을 통해 접한 수많은 회사에서 사건 이후 조직 내 변화를 꾀하기보다 사건의 종결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형식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이는 피해를 축소하거나 극단적으로 가해자 혹은 피·가해자 모두를 회사에서 도려내는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직 안에서 성희롱 사건이 제대로 해결됐다 하더라도 이후에 피해자에게 불이익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는지 몇 개월 단위로 기업 차원의 정기적인 사후관리를 의무화하고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성희롱 사건에 대한 후속 근로 감독도 의무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또 고용노동부에 불리한 조치로 사업주를 고소·고발하더라도 기소되는 사례는 매우 드문 데다 불이익 조치의 불법성을 인정받더라도 벌금 처분 정도에서 끝날 뿐, 원직 복직, 징계철회 등의 원상회복은 동반되지 않으며, 노동위원회를 통해 이를 따로 다뤄야 하는 구조라며 이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인턴·수습·계약직들에게는 사측이 계약만료, 심사탈락 등 표면적으로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계약갱신 거부, 정규직 전환 거부 등의 형태로 불이익 조치를 취한다면서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인턴·수습·계약직에 대해 성희롱을 할 경우 더 엄중하게 처벌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라 국회 여성정책연구회 대표는 압도적으로 '남초공간'인 국회에서 '일상적' 차별과 폭력적 언사가 행해져 왔던 현실을 지적하면서 미투운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자들 무서워서 보좌관 못 쓰겠다"며 비아냥거리는 '펜스룰'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여성정책연구회는 지난달 성명을 통해 "국회는 피감기관과 기업을 상대로 성희롱 고충처리 실태, 여성 임원 비율 확대 등의 시정요구는 잘하지만 정작 내부를 정화할 시스템이 전혀 없다. 말 그대로 치외법권 지대"라고 비판하면서 각당 보좌진협의회 소속 성희롱·성폭력 피해 신고·상담 기구 신설 등을 요구한 바 있다.
이날 집담회에서는 이밖에도 페미니스트 연극연대의 황나나 씨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놓인 연극인들의 현실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회의 오름(가명) 씨가 남학생과 남성교사들로부터 일상적으로 성희롱을 당하는 여교사들의 현실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hisun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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