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체제에서 국정운영 시스템을 바꿔가는 듯한 신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우리의 정기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회의에 앞서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군 서열 1위인 군 총정치국장을 국무위원회 평위원으로 낮춘 것 등은 특히 주목할만하다. 막강한 권력 집단이 돼온 군부의 힘을 빼고 당 주도의 전통적 사회주의 국정 운영 방식으로 전환하는 신호라는 해석이 많다. 이런 변화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을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0일 김 위원장이 전날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남북관계 및 북미대화에 대한 대응방향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노동당의 최고 정책 결정 기구인 정치국 회의가 열린 사실이 공개된 것은 2015년 2월 이후 3년여만이다. 김 위원장이 집권 이후 헌법 개정 등을 통해 노동당 중심의 국가운영을 꾀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고인민회의에 앞서 정치국 회의를 열고 이를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동당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있음을 과시하려는 측면이 강한 듯하다. 이를 통해 중국이나 베트남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당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 했다는 분석이 많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당 대신 국방위원회가 국정운영을 주도했다. 선군정치로 군부의 입김이 세지고 노동당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제13기 6차 회의에서 이뤄진 국무위원회 인사에서 김정각 군 총정치국장이 국무위 평위원에 선출된 것도 '군부 힘빼기'로 볼만하다. 역대 군 총정치국장은 공식 서열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다음일 정도로 높고 막강한 자리였다. 지난해 해임된 황병서 전 군 총정치국장이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것과 비교해도 군부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확실하다. 지난 3월 김 위원장의 방중 수행단에 군 인사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 학계 일각에서는 최근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당과 경제 엘리트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군부의 영향력은 축소됐으며,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보수 정부의 정보통제와 조작으로 부정적 인상만 심어줬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이복형인 김정남을 독살하고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도 잔인하게 숙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런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틀에서 볼 때 김 위원장이 당 중심의 국가운영을 시도하면서 군의 영향력을 줄여온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하다. 그간 군부 인사에 대해 계급장을 뗐다 붙였다 한 것도 군을 길들이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김 위원장이 군부의 영향력을 줄이고 당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해 가면 남북관계 개선이나 비핵화 과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기대해 볼 만하다. 북한 체제상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진정성이 관건이겠지만 사회주의 정상국가처럼 법과 제도의 틀 내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당이 결정하고, 최고인민회의 의결을 거쳐 국무위원회가 집행하는 틀을 갖추면 협상이나 대화를 해나가기가 수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긍정적 신호들이 돌출적인 것이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큰 흐름의 변화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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