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개화·싹틈 시기 눈 내리고 영하권…오디 열매 시들고, 배꽃 얼어붙고
[※ 편집자 주 = 피고 지는 꽃들이 봄의 한가운데 있음을 알리지만 농어민에게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작물에 따라 한해 농사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지만 시름만 깊어지고 있습니다. 4월의 영하 날씨 등 이상 저온, 수급 조절 실패 등 영향이 대지와 바다를 강타했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는 이상 저온피해를 본 전남 보성 배·오디 농가, 어획량 감소로 고민하는 여수 새조개 어민, 산지 폐기로 눈물 흘리는 무안 양파 농민의 이야기를 담은 3편의 르포로 농어촌 현실을 전달합니다.]
(보성=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4월에 눈이라니 농사짓기 육십 평생에 이런 날씨는 처음이야. 땅을 쳐도 분함이 풀리지 않는당께."
지난 12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지동리, 이 마을에서 오디농사를 처음 시작했다는 김상곤(73) 할아버지는 얼어붙어 시든 뽕나무 잎과 오디 열매를 손에 쥐고 한탄을 쏟아냈다.
냉해를 잎은 뽕나무 잎과 오디 열매는 말라 비틀어져 손만 대면 바사삭 소리를 내며 바스러졌다.
4월 초·중순은 특유의 누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초록 잎을 틔울 시기지만, 뽕나무 나뭇가지에는 말라붙은 갈색 잎과 시들어가는 손톱 크기의 오디 열매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김 할아버지가 가꾼 뽕나무는 봄철의 난데없는 한파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뽕나무 오디 열매는 봄에 새잎이 나면서 맺히는데, 이달 7∼8일이 새잎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시기였다.
하지만 하필 그때 눈과 함께 몰아친 영하권 추위로 뽕나무와 오디 열매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보았다.
예상치 못한 봄철 한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이 마을 뽕나무 재배 농민들의 논의도 있었지만 뾰족한 해결 수단을 찾지 못했다.
강추위에 새순조차 틔우지 못한 뽕나무를 살릴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 마을 농민들은 한숨만 쏟아냈다.
내년 농사를 위해 농약이나 영양제를 써야 하는 지, 아니면 죽은 나뭇가지를 쳐내 나무를 먼저 살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하소연도 이어졌다.
뽕나무밭 주인 나형숙(60·여)씨는 "전멸이야. 다 포기야"라고 혼잣말을 되뇌며 "오디를 키워 1년이면 수천만원 이익을 거두는데 올해는 나무가 되살아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신세"라고 한탄했다.
인근 배 재배 농가도 4월 한파를 피할 수 없었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장자리의 올해 배꽃은 평년보다 사흘가량 일찍 피었다.
올해 3월 봄 날씨가 예년보다 따뜻했던 탓인데 이 때문에 벚꽃과 배꽃이 같은 시기에 함께 만개했다.
벚꽃이 질 때쯤 배꽃이 펴야 벌들이 배꽃에 집중해 꽃가루를 옮겨 수정이 이뤄져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벌들의 관심을 벚꽃에 빼앗기는 바람에 인공 수분을 위한 사람 손이 더 필요하게 됐다.
조효익(43) 보성배 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도 지난 7일 활짝 핀 배꽃 수분을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지만 더 황당한 일이 눈앞에 펼쳐져 뒤로 넘어질 뻔했다.
4월초 봄날 배 과수원에 눈이 소복이 쌓였기 때문이다.
배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날인 배꽃 수분 시기에 난데없는 한파가 몰아친 것이다.
기온도 영하 1도가량으로 뚝 떨어져, 다음날까지 한겨울 같은 추위가 이어졌다.
배꽃은 만개 시 영하 1.7도 이하 온도가 30분 이상 지속하면 암술머리 등에 저온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까지 연일 내려 배꽃 만개 이후 수일 내에 해야 하는 인공수분이나 자연수분 시기도 놓쳤다.
조 대표가 농사를 지은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0여 년 전 잠깐 내린 아침 서리로 수확량이 20%나 감소한 적은 있지만, 이처럼 수분 시기에 찾아 온 전면적인 냉해는매우 이례적이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 영하권 기온이 덮치고 며칠 뒤 수정된 배꽃의 중심부는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씨방이라고 불리는 꽃봉오리 아래를 잘라보니 냉해로 상해 검게 썩었다.
보성과 순천 지역은 배 주산지인 나주보다 배꽃이 일찍 만개하는데 공교롭게 이 시기에 봄철 한파가 몰아쳐 큰 피해가 예상된다.
100ha 규모의 보성 배 재배 면적 중 절반가량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배 재해보험가입률도 35% 수준에 그치고, 냉해 특약에 가입한 보험 가입 농가는 더욱 적어 피해 보상을 받을 길도 막막하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7∼8일 불어닥친 한파로 순천 58㏊, 보성 40㏊, 곡성 13㏊ 등 111㏊의 면적에서 냉해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복숭아가 58㏊로 가장 넓었으며 참다래 35㏊, 매실 6.9㏊, 옥수수 5.7㏊, 오디 5㏊ 순이다.
배 등 일부 농작물 피해 면적은 아직 조사조차 되지 않아 피해 농가는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저지대에 있는 나주·영암 배 농가 일부도 저온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
전남도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추위의 영향으로 착과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는 등 후속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며 "지속해서 피해 현황을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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