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남부 마랄린가 지역…1956~63년 7차례 실험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아직 이곳에는 방사성 물질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입 가득 흙만 삼키지 않는다면 방사성 물질에 노출될 위험은 없습니다."
호주 남부의 옛 원자폭탄 실험장에서 유일한 안내원으로 활동하는 로빈 매슈스(65)는 관광지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것 같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냉전의 절정기인 1950년대와 60년대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에서 서쪽으로 약 1천100㎞ 떨어진 원폭 실험장인 마랄린가 지역이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무덥고 황량한 이 지역에서는 호주와 영국 정부의 주도로 1956년부터 1963년까지 모두 7차례 원폭 실험이 실시됐고, 2016년부터 관광객에게 개방됐다.
당시 원폭의 파괴력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트린 것만큼 강력했고, 지표면에 분화구와 같은 큰 구멍들을 만들어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원주민들과 그들의 후손 약 1천200명이 방사성 물질로 인해 고통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는 당시로는 남반구에서 가장 긴 활주로와 함께 도로, 수영장, 숙소가 있었고, 철도로도 접근 가능했다.
이에 따라 수 만 명이 이곳을 거쳐 간 것으로 알려졌으며, 영국군 피폭자들은 배상을 받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호주 정부는 1억 호주달러(832억 원) 이상을 들여 정화작업을 벌였다.
2016년 매슈스의 안내로 실시되는 여행이 시작됐고, 현재까지 이 지역을 찾은 관광객은 약 1천 명이다.
현재는 4명이 상시 거주하고 있으며, 숙소도 갖춰져 온수와 함께 와이파이 서비스가 제공된다.
관광객들은 한 지역을 찾으면 22개의 큰 구덩이를 볼 수 있고, 이들 구덩이 각각은 깊이가 약 15m다. 이들은 땅속에서 방사성 물질이 스며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덮여있다.
1956년 10월에 실시된 실험 때는 지구 위에 깊이 21m, 넓이 42m의 구멍을 내기도 했다.
이런 원폭 실험은 한 원주민 가족에게는 대를 잇는 고통을 남겼다.
1957년 초반 원주민 에디 밀푸디와 그녀의 가족은 평원지대인 그레이트 빅토리아를 횡단하면서 밤을 보낼 곳을 찾아 나섰다.
매슈스는 "그들은 온기가 나오는 거대한 구멍을 만났고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빗물을 마셨다"며 "그곳에서 잠자기 전에는 주변에서 저녁거리로 토끼를 손쉽게 잡았는데, 이 토끼들은 방향감각을 잃은 모습이었다"라고 설명했다.
2주 후 밀푸디는 사산아를 낳았다. 후에 그녀의 손주 모두 신체적, 정신적 기형아로 태어났다.
원폭 실험의 생존자들과 그들의 자녀, 손주는 백내장, 혈액질환, 관절염, 위암, 선천적 결손증을 겪었다.
이런 일은 1970년대 일부 부상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나서고 일부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빛을 보게 됐다. 밀푸디는 1980년대에야 7만5천 호주달러(6천300만 원)의 보상을 받았다.
지역 당국은 항공편 증편 등을 통해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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