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레나 코제나 & 바로크 오케스트라 '라 체트라'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세계 최정상의 체코 출신 메조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45)가 1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위기의 여인들'이라는 타이틀로 두 번째 내한 독창회를 열었다.
코제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거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된 지휘자 사이먼 래틀(63)의 아내로도 유명해 '클래식계의 퍼스트레이디', '음악계의 황후'란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코제나의 핵심 레퍼토리는 역시 바로크 음악. 이번 독창회에서 코제나는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거장 안드레아 마르콘이 지휘하는 앙상블 '라 체트라'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따뜻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1부 첫 순서에서 '라 체트라'의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더블베이스, 류트, 쳄발로 주자 아홉 명이 한 사람씩 연주하며 무대에 등장했다. 귀여운 남자 어린이 하나가 덩달아 무대에 등장하더니, 첼로 주자의 자리를 빼앗아 진지하게 연주를 해서 관객을 웃게 했다.
심플한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코제나가 무대에 등장해 노래한 첫 곡은 몬테베르디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 중 네로의 황후 오타비아의 아리아 '버림받은 아내'였다. 새 연인 포페아에 빠진 남편 네로가 황후인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절망적 상황을 절절하게 표현해 공감을 끌어낸 노래다.
바로크의 신선한 활력을 일깨운 타르퀴뇨 메룰라의 '폴리치오 춤곡', 멜로디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몬테베르디의 '달콤한 고통' 등에 이어 1부에서 가장 관객의 사랑을 받은 곡은 체코 현대 작곡가 마르코 이바노비치의 '아리안나가 할 말 있다'였다. 몬테베르디의 라멘토(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음악) '아리안나의 탄식'을 바탕으로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이 곡은 가사가 무척 유머러스한 패러디 작품이다.
몬테베르디의 원작 부분은 이탈리아어로, 현대에 가사를 덧붙인 부분은 영어로 노래하거나 말한다. 이탈리아어로 슬픈 노래를 부르던 코제나가 갑자기 영어로 앞자리에 앉은 관객에게 "제 노래가 무슨 내용인지 이해 못 하시는 거 같네요"라면서 말을 거는 대목은 관객들을 폭소하게 했다. 장중하고 기품 있는 라멘토 중간에 지극히 통속적이고 일상적인 신세 한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어진 20세기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의 '세쿠엔차Ⅲ'는 가사도 멜로디도 없는 작품이다. 성악가는 노래가 아닌 온갖 소리를 입으로 만들어내며 마치 마임을 하듯 관객에게 다양한 동작을 보여줬다.
1부에서 중앙에 자리 잡은 연주자들은 2부에서 무대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왼쪽에는 바로크 극장식의 풋라이트(각광)가 설치된 작은 무대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몬테베르디의 '전쟁과 사랑의 마드리갈' 중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싸움' 장면이 마치 오페라처럼 공연됐다.
이 장면에는 십자군 영웅인 기사 탄크레디와 이슬람 여전사 클로린다, 그리고 해설자까지 3명이 등장하지만, 이번 공연의 연출가 온드레이 하벨카의 빛나는 아이디어는 이 대목을 코제나 한 사람의 모노드라마로 재탄생시켰다.
연인 사이이면서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 싸움을 벌이다가 클로린다는 탄크레디의 칼에 죽음을 맞이한다. 코제나는 두 개의 투구와 두 자루의 칼로 이 격렬한 싸움을 묘사하는 와중에 해설자 역할까지 맡으며 1인 3역을 드라마틱하게 연기했다.
바로크 오페라나 칸타타, 마드리갈 등의 작품은 공연을 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극장에서도 이런 '세미시어터' 방식으로 제작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근래에 보기 드문 학구적이고 격조 있는 독창회 프로그램이었다. 그럼에도 재치와 유머가 넘쳐 관객 몰입도가 특별히 높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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