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승격 확실한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는 일단 보물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유일하게 실물이 존재하는 조선 개국공신교서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있는 보물 제1294호 '이제 개국공신교서'를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교서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1392년 개국 일등공신에 책봉된 이제(?∼1398)에게 내린 문서다. 이제는 태조와 계비 신덕왕후 소생인 경순궁주와 혼인해 태조 즉위에 공을 세웠다.
조선 최초 공신교서인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이제가 조선 창업 과정에서 세운 공과 포상 내용을 기록했고, 끝 부분에는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는 어보를 찍었다. 이 어보는 명나라가 1370년 공민왕에게 준 도장이다.
당시 태조는 큰 공을 세운 정공신에게는 교서와 녹권(錄券)을 하사했고, 왕을 수종한 원종공신에게는 녹권만 줬다. 교서는 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이지만, 녹권은 공신도감이 국왕 명에 따라 신하에게 발급했다.
개국공신녹권 중에는 '이화 개국공신녹권'이 국보 제232호이고, 개국원종공신녹권 7건이 보물이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이숙기 좌리공신교서',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지장시왕도'와 함께 보물 지정이 예고됐다.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2009년 서탑 심주석(心柱石) 사리공(舍利孔, 사리를 넣으려고 마련한 구멍)과 기단부에서 나온 금제사리봉영기와 사리호, 청동합이다.
특히 193자를 새긴 사리봉영기에는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 639)에 사리를 봉안했다는 내용이 있어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미륵사를 창건한 주체는 백제 무왕과 그의 왕비이자 신라 진평왕 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라고 돼 있으나, 사리봉영기에는 왕후가 사택적덕 딸로 기록됐다.
석탑에서 나온 금동사리외호와 금제사리내호는 동체 허리를 돌려 여는 구조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양감과 문양이 뛰어나며 형태가 안정적이다. 청동합은 6점으로 구성됐으며, 그중 하나에 '달솔(達率) 목근(目近)'이라는 명문이 있다. 달솔은 벼슬 명칭이다.
이 사리장엄 일체 유물은 국보 승격이 확실시된다. 이번 보물 지정 예고는 그 전단계 조치다.
이숙기 좌리공신교서는 이숙기(1429∼1489)가 성종(재위 1469∼1494) 즉위를 보좌한 공을 인정받아 1471년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4등)에 책봉된 이듬해에 받은 공신교서다.
이 교서는 성종 추대에 관여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원천 자료로, 구치관과 이영은이 각각 2등과 4등 공신으로 추가 책봉됐다는 사실이 기록됐다.
지난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일본 소장가에게 기증받은 이선제 묘지는 조선 세종대 집현전 학사를 지낸 이선제(1390∼1453)가 세상을 떠난 뒤 1454년(중국 연호 경태 5년) 그의 생애를 적어 무덤에 넣은 기록물이다.
위패 형태로 제작한 점이 특징으로, 15세기 상장 의례와 도자 기술, 서체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로 평가된다.
호림박물관 소장 지장시왕도는 1580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화로, 지장삼존을 중심으로 명부계를 다스리는 시왕 열 명, 판결과 형벌 집행을 하는 제자를 한 폭에 그렸다.
국내에 유일하다고 알려진 16세기 지장시왕도로, 제작 시기가 명확하고 구도와 양식적인 면이 뛰어난 조선 중기 불교회화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간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 지정을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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