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가족들이 저지른 각종 불법·탈법·비리 폭로가 쏟아져 나오자 정부기관들이 곳곳에서 시퍼런 칼을 빼 들고 있다. 관세청은 대한항공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어 메신저 제보 방을 만들어 총수일가의 밀수·탈세 등의 증거 수집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일가가 기내 면세품 판매와 관련해 부당한 수수료인 '통행세'를 거뒀는지 조사하고 있다. 경찰도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갑질을 수사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벌였고, 고용노동부도 근로자들을 상대로 실태 파악에 들어갔다.
정부기관들의 이런 움직임은 외양간에서 소 사라진 지 한참 뒤에서야 도둑 잡겠다며 꽹과리 치는 듯한 모양새다. 조 회장 가족의 비정상적 행태가 한두 해에 걸쳐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관세청은 조 회장 가족들의 소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인데, 그동안 뭐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십 년간 조 회장 가족들이 개인 물품을 무단으로 들여왔는데도 공항에 상주하는 세관 직원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미 관세청은 대한항공과 유착하면서 불법을 묵인했을 것이라는 의혹에 휩싸였다. 관세청 스스로 내부감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검경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재벌 저승사자'라고 하는 공정위도 뒷북을 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조 회장 가족들에게 통행세를 넘겼을 것으로 의심되는 트리온 무역의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한진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의 대표와 조현아·원태·현민 씨 3남매가 공동대표로 있는 면세품 중개업체다. 법인이 아닌 개인회사여서 관리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 업체라고 하더라도 대기업집단 총수가족이 실질적 주인이라는 점에서 국민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조 회장 가족들이 통행세를 거두는 부당한 행위는 30∼40년이나 됐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는데 그동안 당국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은 듯하다. 공정위는 지난 2016년 대한항공의 일감 몰아주기를 대대적으로 조사하면서도 이 통행세를 놓치고 말았다.
항공분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마저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외국인 국적의 조현민 전무가 과거 6년간 국적 항공사인 진에어의 등기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지만, 국토교통부는 어찌 된 영문인지 계속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현행 항공사업법에 따라 한국 국적 항공사의 등기임원이 될 수 없다. 이 부처 공무원들이 이를 알고서도 모른 척했는지, 아니면 관련 규정을 숙지하지 못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구멍이 뻥 뚫린 조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부처의 김현미 장관이 불같이 화를 내고 자체감사를 지시했다고 하나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천국제공항에는 국토부, 관세청, 국세청, 국정원, 경찰, 법무부 등 19개 정부기관이 들어와 상주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이런 탈법·불법·비리 등에 대해 제동을 걸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사건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은 사업자와 감독 당국이 기본을 지키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사업하는 업체는 관행이라면서 규정을 외면했고, 감독을 해야 할 당국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이게 한국의 뿌리 깊은 병폐인데, 대한항공 사태도 같은 맥락에서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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