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해명·음해·가짜 경력 등 허위사실 공표로 줄줄이 낙마
"선거 공정성 저해, 진의 왜곡시키는 중대 범죄"…법원 엄벌
(전국종합=연합뉴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신중히 생각하고 하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모든 말에는 그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도 된다.
거짓말을 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얘기인데, 요즘 같은 선거철 정치인들이 특히 명심해야 할 말이다.
상황에 따라 당선되고도 중도 낙마하는 불명예를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24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나용찬 충북 괴산군수의 상고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공직선거법상 당선무효형인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서 나 군수는 곧바로 군수직을 상실한 것은 물론 향후 5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4·12 보궐선거를 통해 괴산군의 수장이 된 그의 임기는 1년에 불과했다.
나 군수는 보궐선거를 앞둔 2016년 12월 견학을 가는 사회단체 관광버스에 올라 이 단체 여성국장에게 찬조금 명목으로 20만원을 준 혐의(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로 기소됐다.
그는 금품제공 사실이 지역 일간지에 보도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돈을 빌려줬다가 받은 것이라고 거짓 해명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나 군수가 당선 무효형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린 것은 금품을 건넨 사실보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거짓 해명을 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1심 재판부는 나 군수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하면서 "기부행위는 비록 소액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범행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 "허위사실 공표로 선거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역시 이 판단이 옳다고 봤다.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3선 고지에 올랐던 유영훈 전 충북 진천군수도 선거 유세 과정에서 내뱉은 거짓말에 발목이 잡혀 중도 낙마했다.
유 전 군수는 선거를 앞두고 방송국 TV토론회 등에서 상대 후보가 도의원 시절 진천군 도로사업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불법 오락실과 사채를 운영한 경력이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런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유 전 군수는 법정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대지 못했다.
법원은 "선거일에 임박해 객관적 증거 없이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비방했고, 당락 득표 차가 263표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줬다"며 유 전 군수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결국 유 전 군수는 3선 고지 등정이라는 영광을 뒤로 한 채 민선 6기 충북지역 첫 낙마 단체장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2015년에는 무려 4명의 단체장이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로 중도 낙마했다.
박경철 전 전북 익산시장은 희망제작소가 선정한 '희망후보'가 아닌데도 2014년 지방선거 이틀 전 '희망제작소에서 인증받은 목민관 희망후보'라는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자회견까지 했다.
또 두 차례 TV토론에서 상대 후보를 겨냥해 "취임하자마자 쓰레기 소각장 사업자를 바꿨다. 왜 바꿨는지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공격했다.
법원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허위사실 공표로 인정, 박 전 시장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현삼식 전 경기 양주시장은 2014년 지방선거 때 '희망 장학재단을 만들었다'거나 '지자체 중 유일하게 박물관·미술관·천문대를 보유하고 있다', '민간 운영 관리권을 매입하고 국가재정사업으로 전환해 2천500억원의 시 재정을 절감했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선거공보에 실어 유권자에게 배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2심에서 2천500억원 규모의 시 재정 절감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으나 나머지 2건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돼 벌금 150만원이 선고됐다. 이듬해 대법원 확정 판결로 현 전 시장은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박영순 전 구리시장도 2014년 5월 27일부터 지방선거 직전까지 선거사무소 건물에 '구리월드디자인시티(GWDC) 유치 눈 앞에! 국토부 그린벨트 해제 요건 충족 완료!'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전광판 광고를 했다가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중도 낙마했다.
하학열 전 경남 고성군수는 2014년 지방선거 공보물에 세금 체납 내역을 빠트린 게 문제 됐다.
그는 2010년 소득세 59만2천원, 2013년 소득세 392만8천원을 내지 않았으나 이 사실을 공보물에 적시하지 않았다.
법원은 하 전 군수가 당선될 목적으로 세금 체납 내역을 고의 누락했다고 보고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적용, 당선무효형인 벌금 120만원을 선고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당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는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의 공정성을 저해하고 진의를 왜곡시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중대 범죄"라고 강조했다.
(김동철 김선경 우영식 전창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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