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자동화 '맑음'…제조·건설·운수·유통·방송 '흐림'
"중소기업·하위노동자 어려워져…유연한 적용 필요"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임은진 기자 = 전문가들은 법정 근무시간 단축이 장기적으로 국내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업종별로 여행과 스포츠 등 여가 관련 산업은 성장이 기대되지만, 제조·건설·운수·유통업종은 타격을 받아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관측됐다. 법정 근무시간 단축으로 중소기업과 소득 하위층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선 업종별, 상황별로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30일 "우리나라는 인구 구조상 노동 공급 과잉 국면이 2025년까지 지속할 것"이라며 "근로시간 단축이 일종의 '잡쉐어링' 효과가 있어 고용 개선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일의 효율은 일하는 시간에 반비례한다"며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노동시간 체제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업종별 명암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여가가 늘면서 여행과 레저, 외식 업종은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줄어든 근로시간을 메우기 위한 기업의 대응 과정에서 자동화 관련 업체도 수혜가 예상된다.
김태기 교수는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여가가 늘 수밖에 없다"며 "문화, 스포츠, 여행, 레저, 항공운수 등 여가 관련 산업이 상대적으로 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공장 자동화나 물류 자동화, 시스템 통합 관련 기업도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초과 근무가 많고 인원 감축이 쉽지 않은 제조업이나 운수, 유통 등 업종은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김성희 교수는 "초과노동 일상화로 52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이 높은 제조업이나 운수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본부장은 "제조업과 건설업, 운수업, 도소매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으나, 근로시간 단축이 취업자 증가로 이어지면 오히려 내수 업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법정 근무시간 단축으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소득 상위층보다 하위층 노동자가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 오는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이 '주당 근로시간 52시간'을 지켜야 하지만, 50∼299인 사업장과 5∼49인 사업장도 각각 2020년 1월 1일, 2021년 7월 1일부터 법을 적용해야 한다.
김태기 교수는 "법정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의 피해액이 12조3천억원으로 추산됐다"며 "이 중 300인 미만 중소기업 피해액이 8조6천억원에 달해 규모가 영세할수록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중소기업은 근로자 소득이 더 많이 줄기 때문에 인력 확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근로시간을 줄이면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데 중소기업은 그런 측면에서도 여건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도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를 보면 근로자 소득이 평균 37만7천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소득 하위층 근로자는 법정 근로시간 이상의 업무로 많은 소득을 희망한다는 점에서 소득 감소 효과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제도의 연착륙과 안착을 위해선 '속도 조절과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은 한마디로 정부발 구조조정"이라며 "속도 조절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많은 기업이 폐업하고 일자리가 급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선 탄력적 근로 시간제나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보상 휴가제 등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제도를 도입한 곳이 많다.
실례로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1990년대 중반 수요 급감으로 경영 위기 상황에 놓이자 대량 해고 대신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를 도입해 극복했다.
조 센터장은 "이미 많은 기업이 탄력적 근로 시간제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근무시간 단축 시행 이후 1년까지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야근이 일상화한 게임이나 방송, 병원, 반도체, 자동차 등 업종에 확대 운영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본부장은 "독일 금속노조는 올해 초 사용자와 단체협약으로 주당 35시간에서 28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 요구권'을 도입하면서 노사 합의로 4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허용했다"며 "획일적 적용보다 산업별 현실에 맞는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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