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작가 사이먼 가필드 '투 더 레터'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좀처럼 편지를 쓰지 않는 시대다. 손편지를 위협한 이메일도 문자메시지나 소셜미디어에 밀려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손편지는 여전히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 연예인들이 결혼 소식을 발표하거나 잘못을 사과할 때 굳이 편지를 쓰고 그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도 손편지가 그만큼 진정성을 담보한다고 믿어서다.
영국 논픽션 작가 사이먼 가필드가 쓴 신간 '투 더 레터'(글담출판사 펴냄)는 지난 2천 년간 인류와 함께한 편지 역사를 소개하면서 그 불멸하는 가치를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현존하는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로마 서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편지를 뒤적여가며 주인공 사연과 당대 사회상을 복원해낸다.
편지는 사람들이 시시콜콜한 일상을 주고받는 매개체이면서 내용에 따라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 정치가 플리니우스가 역사가 타키투스에게 쓴 편지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플리니우스는 편지에서 17살 때 있었던 폼페이 베수비오 산 폭발을 회상했다. 그는 "물론 이러한 상세한 내용이 역사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밝혔지만, 이 편지는 폼페이 사건을 증거하는 동시대 유일한 기록이 됐다.
아무래도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연애편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헨리 밀러, 나폴레옹, 헨리 8세 등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낸 편지에는 '날 것' 그대로 감정이 담겼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편지를 "가장 아름답고 가장 즉각적인 삶의 숨결"이라 말했다. 편지 역사를 숨가쁘게 돌아본 저자 또한 "하나의 세계와 그 안에서 개인이 한 역할을 이렇듯 직접적이고, 이렇듯 강렬하고, 이렇듯 솔직하게 그리고 이렇듯 매력적으로 되살릴" 유일한 방법은 편지라고 단언한다.
"나는 편지가 현관 앞 깔개에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를, 항공우편에 찍힌 가늘고 파란 줄을, '참석 여부 통지 요망'이라 적힌 초대장의 현란한 무게를, 감사장의 행복한 재채기를 여전히 정의해보려 애쓰고 있다."
김영선 옮김. 608쪽. 2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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