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축산업 기반 다지고 사회복지사업 추진한 '푸른 눈의 은인' 영면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지난 23일 90세를 일기로 선종한 패트릭 J.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 장례미사가 27일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진행됐다.
장례미사에는 성직자와 신자 등 2천여 명이 참석해 맥그린치 신부의 업적을 되새기고 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미사를 집전한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은 "선종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슬픔에 젖지는 않았다. 천수를 누리고 가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사제로서 샘이 날 정도로 멋지고 부러운 인생을 사셨기 때문"이라며 그의 업적을 되새겼다.
강 교구장은 "전쟁의 광풍 속에 온 국민이 가난하고 고통스럽던 때 제주에 와 한림성당을 짓고, 황무지를 일궈 드넓은 목장을 만들고, 피정의 집, 수녀원, 요양원, 젊음의 집, 호스피스 병원까지 지었다"며 "이곳에서 가난한 농민들이 기술을 배우고 삶의 밑천을 얻어 독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교구장은 "임 신부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멋지고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평안히 쉬십시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맥그린치 신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성직자 등도 그의 업적을 되새기고, 과거 추억들을 꺼내며 고인을 추모했다.
맥그린치기념사업회 대표인 양영철 제주대 교수는 "신부님은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고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공동체를 이뤄 추진하며, 개발이익을 사회복지로 연결하는 '맥그린치 모델'을 남겼다"며 지역개발 차원에서의 업적에 관해 얘기했다.
양 교수는 "1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신부님은 도민 중심의 지역개발,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당부할 것"이라며 "신부님의 지역개발 모델과 사랑은 기념사업회가 이어가겠다. 65년간 제주에서 한라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사신 신부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장례미사에 앞서 이날 오전 빈소인 제주시 한림성당에서 운구 행렬이 출발하자 성직자와 신도 등 50여명은 성당 입구까지 나와 한림성당 초대 주임신부인 맥그린치 신부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한림항과 한림읍내를 거쳐 금악리로 향했다. 마을 곳곳에서는 주민들이 두 손을 모으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구차가 성이시돌 글라라 수녀원에 도착하자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수도생활을 하던 수녀 20여명이 나와 맥그린치 신부를 위해 10여분 간 기도했다.
운구 행렬은 성이시돌 목장 곳곳을 한 시간 넘게 돌며 맥그린치 신부의 마지막 길을 축복하고 그가 일군 기적을 되새겼다.
장례미사 후 맥그린치 신부는 이시돌 글라라수녀원 묘지에 안장된다.
맥그린치 신부는 지난 9일 심근경색과 심부전증 등 허혈성 심질환으로 제주한라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지난 23일 오후 6시 27분 선종했다.
192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맥그린치 신부는 195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모국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땅 제주에 왔다. 당시 제주는 4·3과 한국전쟁으로 물질적으로도 빈곤하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한 상태였다.
그는 가난을 타개할 대책으로 성이시돌 목장을 설립하고 척박한 한라산 중턱 산간을 일구고 새로운 농업기술을 전파했으며 축산업 기반을 다졌다. '푸른 눈의 돼지 신부님'이라는 애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목장사업을 기반으로 한림수직을 설립해 수많은 제주 여성을 고용했고, 제주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인 한림신협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업으로 생긴 수익금을 바탕으로 병원·양로원·요양원·유치원·노인대학·청소년수련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을 설립, 운영하며 도민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다.
도민이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선 이후에는 '호스피스 사업'에 집중했다. 가난한 이들도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호스피스 병원을 마지막 사업으로 택해 2002년 성이시돌 병원을 호스피스 중심의 복지원으로 재개원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해 적십자상, 제주도문화상 등을 받았고 1973년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았다. 2014년에는 한국에서 반세기 넘게 선교와 사회사업에 몸 바친 공을 인정받아 고국인 아일랜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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