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의료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믹스는 27일 최신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이런 문제를 '현대 의학의 잠재력 낭비'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재정적 타격 없이 안전한 기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보편의료가 이 문제의 합리적 해결책으로 주목받는다고 설명했다.
◇ 날아다니는 의학, 기어다니는 의료
2000년 이후 전 세계에서 5살 이전에 목숨을 잃는 어린이들이 한해 560만 명으로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기대수명은 5년 늘어 71세까지 도달했다. 더 많은 어린이가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말라리아나 결핵, 에이즈도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부문에서 괄목할 진보가 있었지만,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 되풀이되는 곳들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인 절반이 꼭 필요하다고 보는 의료복지 수준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전 건강관리를 비롯해 자궁경부암, 디프테리아 예방을 위한 백신접종, 파상풍, 백일해 등에서 그런 취약점이 드러난다.
지구촌의 무려 50억명이 안전한 초보적 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의사 진료를 받으려면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전 세계 8억 명 이상이 연간 가계수입의 10% 이상을 의료비로 지불하고 있다. 1억8천만 명은 무려 25%를 지출한다.
이렇게 과도한 돈을 들이고도 받는 치료이지만 그 수준이 한심할 때도 드물지 않다.
인도와 중국 지역 의료계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들 지역에서 제대로 된 처방을 받는 환자는 12∼26%에 불과하다.
◇ 보편의료는 '성장의 토대'로 볼 수도
이코노미스트는 보편의료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의무교육처럼 합리적이란 게 최근 연구들의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편의료가 구현되지 않는다면 현대 의학의 잠재력은 허비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보편의료가 강력한 분배정책으로 비칠 수 있지만 친성장적인 면도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공공의료 보험제도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 젊은 이들이 나이 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치료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을 보면 시야가 달라질 수 있다.
건강하지 않은 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효과적으로 생산에 동참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제성장과의 연관성을 가늠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다수 연구결과를 인용해 건강에 자신이 있는 이들이 창업에 더 적극적이라고 소개했다.
◇ 보편의료 해도 국가 살림살이 괜찮나
이코노미스트는 보편의료는 재정적으로 시도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꼭 부자나라가 돼야 광범하고 기초적인 치료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의료서비스가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특히 지역의 의료서비스 종사자들의 급여가 의사나 간호사보다 낮다며 빈국에서 이들의 활동이 보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난한 나라에서도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수준의 의료비 지출이 이뤄진다.
인도와 나이지리아에서는 의료비 지출 가운데 60% 이상이 진료비 본인 부담으로 충당된다.
질환에 대한 우려, 치료를 위한 자금이 공동으로 이용된다면 더 많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보편의료의 운용 가능성과 효용이 국가별 통계에서도 입증된다고 지적했다.
칠레와 코스타리카는 미국보다 1인당 의료비를 8분의 1 정도로 적게 쓰지만 비슷한 기대수명을 유지하고 있다.
태국의 경우 연간 1인당 의료비 지출액이 220달러(약 24만원)이지만 기대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못지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임신과 관련한 사망률을 보면 태국인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주목했다.
이 매체는 국민 90% 이상에 대해 강력한 보편의료를 적용한 르완다를 괄목할 사례로 제시했다.
르완다의 영아 사망률은 보편의료 도입에 따라 2000년 1천명당 120명에서 작년에 30명 미만으로 급감했다.
ky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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