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이산가족 "건강 안 좋지만 악착같이 살아서 만나야지"(종합)

입력 2018-04-27 20:34   수정 2018-04-27 20:59

[판문점 선언] 이산가족 "건강 안 좋지만 악착같이 살아서 만나야지"(종합)

이산가족 상봉 재개 소식에 "고향 땅 가서 성묘하는 게 소원" 눈시울


(전국종합=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정상회담에서 8·15 광복절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기로 하자 이산가족들은 오랜 기다림과 고통의 시간에 눈시울을 붉히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고령으로 몸은 좋지 않지만 죽기 전에 가족을 꼭 만나야 한다며 하루빨리 그리운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북 전주에 사는 임옥남(89)씨는 "오늘 아침부터 종일 '우리 같은 사람들도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너무 좋고 고맙고 다 감사하다"며 "꼭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고 자유롭게 서로 오갈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임 할머니 동생 옥례(82)씨는 17살인 1950년 고향인 전북 완주에서 "북으로 가면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북한군 말에 북으로 올라갔고 68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황해도 연백군 출신인 이병호(93·인천 부평구) 할아버지는 "북쪽에 아내와 아들 둘이 있는데 아내는 90살이 넘어 생사를 알지 못한다"며 "나이 많으신 다른 가족들에게 순서가 밀려 아직도 만나지 못했는데 꼭 보고 싶다"고 간절함을 내비쳤다.
또 "남쪽에서 자리 잡고 결혼해 아들 하나를 뒀는데 죽기 전에 북쪽 가족을 만난다면 남쪽 아들과 북쪽 아들들을 서로 소개해주고 싶다"며 "내가 죽더라도 남북 아들들이 서로 정을 나누며 사이좋게 지낸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 소망했다.
광주 서구에 사는 김순임(79) 할머니는 2014년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64년 만에 큰오빠 권수(86)씨와 재회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김 할머니는 "오빠와 지난 상봉 때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그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며 ""아들 셋, 딸 한 명을 두고 잘살고 있다는데 조카들과 새언니도 꼭 만나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다"며 울먹였다.
평안남도 안주에 살던 안윤준(89·경기 성남) 할아버지는 6·25 전쟁 발발 직후 단신으로 월남, 국군에 입대해 55년에 전역했다.
<YNAPHOTO path='PYH2018042736060001300_P2.jpg' id='PYH20180427360600013' title='[판문점 선언] 서명문 교환하는 남북 정상' caption='(판문점=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서명한 '판문점 선언문'을 교환하고 있다. <br>scoop@yna.co.kr' />
그는 2015년 금강산에서 열린 20차 이산가족 상봉 때 동생 3명 중 2명을 만나 생사를 확인했으나 1명은 먼저 작고해 끝내 보지 못했다.
부모는 자신이 월남했다는 이유로 북에서 고생하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동생들을 통해 전해 듣기만 했다.
안 할아버지는 "3년 전 만난 동생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 보고 싶은데 이산가족 상봉에 다시 나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이제 나이가 많아 다시 동생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이 잘 풀려 꼭 한번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기원했다.
황해도에 살던 조순전(86·경기 안양) 할머니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것 같다는 소식에 동생들 얼굴이 떠올랐다"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북에 여동생 3명이 생존해 있는 조 할머니는 "남한에 사는 우리와 달리 어려운 생활로 힘들어하는 동생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며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죽기 전에 기회가 생길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강원 춘천에 사는 심영순(72·여)씨는 6·25 전쟁 직후인 1950년 8월 5살 때 아버지(생존 시 94세) 얼굴을 마지막으로 봤다.
당시 경기 부천군 계양면에 살았던 심씨는 5년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끊어진 한강철교 보수공사 부역에 아버지가 동원된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씨는 어머니 생전인 2000년 8월 이후 20여 차례에 걸쳐 줄곧 아버지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상봉을 신청했으나 번번이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는 한평생 아버지와 만날 말만 기다리다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아버지의 생사라도 알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며 "아버지를 보게 되면 '어머니가 평생 아버지만을 기다렸다'고 전해 드리고 싶다"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YNAPHOTO path='C0A8CA3D00000162FF5347F000100B2B_P2.jpeg' id='PCM20180426000119887' title='남북 이산가족 상봉 (CG) [연합뉴스TV 제공]' caption=' ' />
개성 출신인 최호정(83·충남 논산) 할아버지는 2015년 10월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에 사는 막내 여동생(봉선·76)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죽기 전에 한 번 더 고향에 가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최 할아버지는 "몸이 안 좋은데 이산가족 상봉을 하려면 몇 개월 걸릴 것 같아 걱정이다"며 "악착같이 살아서 올해 안에는 고향에 갔다 왔으면 좋겠다"며 고향의 그리움을 전했다.
이북5도 충남사무소장 전우재(65)씨는 "이산가족 상봉을 할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북에 계신 부모와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통곡을 하셨지만, 한 번도 만남이 성사되지 않아 아쉬워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전씨는 "갓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헤어진 데다 사진 한 장 없어 어머니 기억이 전혀 없다"며 "나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어서 어머니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평양 출신 김관국(84) 충북 이북5도민 회장은 고향에 누나 둘과 동생 둘이 있지만, 지금껏 이산가족 상봉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김 회장은 "60년 넘게 형제를 만나지 못하고 죽는 고통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산가족 상봉 대상에 포함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애절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죽기 전에 고향 땅을 한번 밟아 보고 성묘라도 실컷 하는 게 소원이다.
(장아름 윤태현 고성식 정경재 최해민 이재현 박주영 심규석 차근호 이승형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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