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숨가빴던 11시간 59분…급격히 가까워진 두 정상

입력 2018-04-27 21:51   수정 2018-04-27 22:12

[판문점 선언] 숨가빴던 11시간 59분…급격히 가까워진 두 정상
문 대통령, 군사분계선 먼저 나와 北 일행 따듯한 환대
김정은, 삼엄한 경호 속 등장…파격·배려로 '얼음장 깨기'
'소떼 길'에 소나무 심고 '도보다리' 벤치회담으로 친교
순조로운 오전 회담 덕분 오후 일정 축소…'판문점 선언' 성과






(고양=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2박 3일 일정이었던 1·2차 회담과 달리 당일치기로 치러져 종일 숨 가쁘게 진행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첫 악수(오전 9시 29분)에서부터 부부동반 환송행사 합동 감상에 이은 최종 작별 인사(오후 9시 28분) 때까지 총 11시간 59분간의 회담 전체 일정을 소화했다.
두 정상은 회담을 앞두고 특사와 친서를 주고받은 덕분에 서로의 의중을 잘 이해한 듯 첫 만남부터 친밀감을 숨김없이 표현하며 어색함 없이 어울렸다.
두 정상은 이어 사전 환담과 회담, 공동 식수와 친교 산책을 함께하며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가까워진 모습을 보였다.



◇ 문 대통령, 김정은 제안으로 '깜짝 월경'
김 위원장이 이날 오전 판문점 북측 지역의 판문각 현관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20여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삼엄한 경호를 받는 모습이 위협적으로 비쳤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비키라우"라고 명령하자 경호원과 수행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좌우로 흩어졌고, 판문점 하늘색 건물 사잇길을 혼자 걸어 내려오는 김 위원장의 표정도 이내 밝아졌다.
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앞에 먼저 나와 서 있다가 김 위원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상대 정상에 대한 배려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김 위원장이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며 문 대통령 손을 이끌어 함께 북쪽 땅을 밟은 순간은 이날의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기록됐다.
북측 사진기자 1명이 군사분계선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두 정상을 촬영하다가 눈물을 연신 닦는 모습이 남측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 방남한 김 위원장은 접경지역인 대성동 초등학생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서 문 대통령의 안내를 받아 공식 환영식장으로 향했다.
두 정상은 자유의집과 평화의집 사이 판문점 광장에서 국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우리 군악대는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과 '신아리랑 행진곡' 등을 연주하며 김 위원장에게 국빈급 예를 갖췄다.




◇ 문 대통령 "만남 이어졌으면 좋겠다"…김 위원장 "자주 만나자"
회담장으로 향하기 전 두 정상이 공식 수행원들과 인사를 나눌 때에도 파격적 장면이 연출됐다.
문 대통령이 악수하려고 다가서자 군복 차림을 한 리명수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 등이 연달아 짧은 거수경례를 한 것이다.
이는 우리 측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정경두 합참의장이 김 위원장과 악수하며 허리를 굽히지 않은 것과 대조됐다.
문 대통령과 평화의집으로 도보 이동한 김 위원장은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역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적어 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회담 전 사전 환담에서는 두 정상의 흉금을 털어놓는 대화가 이뤄졌다.
문 대통령이 "오늘 판문점을 시작으로 평양과 서울, 제주도, 백두산으로 만남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자 김 위원장이 "이제 자주 만나자. 우리도 잘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오전 10시 15분부터 11시 55분까지 100분 동안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서 진행된 확대정상회담을 통해 큰 틀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던 김 위원장이 사진 기자에게 "잘 연출됐습니까"라고 농담을 던지는 등 앞장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오전 회담을 마치고 평화의집 현관에서 벤츠 리무진 전용 차량에 탑승, 북측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지역으로 돌아갔다.




◇ '도보다리' 산책 도중 30분 간 벤치대화…회담의 '하이라이트'
두 정상의 공동 기념식수 행사는 예상보다 2시간여 늦은 오후 4시 30분께 진행됐다.
애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확대정상회담 이후 각자 오찬과 휴식시간을 가진 후 곧바로 다시 만나 공동 기념식수와 친교 산책을 하고 다시 오후 단독정상회담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됐다.
오후 일정이 대폭 축소된 셈이다.
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다시 남쪽 땅을 밟은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함께 '소떼 길'에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생 소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은 소떼 길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소 1천1마리를 끌고 고향으로 방북했던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T3) 옆 잔디밭 길이었다.
문 대통령은 백두산 흙과 대동강 물을, 김 위원장은 한라산 흙과 한강 물을 나무 뿌리 부근에 뿌리고 박수를 쳤다.
이어진 '도보다리' 산책은 이번 회담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 했다.
도보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원회(당시 체코, 폴란드, 스위스, 스웨덴)가 임무 수행을 위해 짧은 거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습지 위에 건설한 다리다.
식수 행사를 마친 두 정상은 도보다리를 나란히 걸어 다리 끝에 있는 101번째 군사분계선 표식물을 함께 살펴보고, 표식물 근처 벤치에 수행원 없이 단 둘이 앉았다.
두 정상은 원형 탁자를 가운데 두고 불과 1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로 마주앉은 채 오후 4시 42분부터 5시 12분까지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멀리서 촬영한 생중계 카메라에는 요란한 새 소리만 담겼다. 두 정상이 그만큼 내밀한 대화를 나눈 셈이다.



◇ 서로 잡은 손 높이 들고 포옹하며 '회담 성공' 자축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도보다리에서 나와 다시 평화의집으로 향했다. 이어 각 실무진으로부터 문구를 조정한 합의문 내용을 보고받았다.
두 정상은 이날 오후 5시 40분 평화의집에서 역사적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판문점 선언')에 서명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그랬던 것처럼 두 정상은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높이 들어 보임으로써 성공적인 회담을 자축했다.
두 정상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껴안아 감동을 더 했다.
두 정상은 이어 평화의집 현관 밖으로 함께 나와 판문점 선언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라는 회담의 핵심 의제에 충분히 합의했을 때를 가정해 기대했던 발표의 형식과 장소였다.
공동 발표에서는 "대담하고 용기 있는 결정을 해준 김 위원장에게 박수를 보낸다"(문 대통령), "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많은 노고를 바치신 문 대통령에게 깊은 사의를 표한다"(김 위원장)며 서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평화의집 3층 연회장에서의 환영 만찬은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합류한 가운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올가을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을 기약한 김 위원장은 평화의집 앞 환송 행사를 끝으로 문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북쪽 땅으로 돌아갔다.



hanj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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