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 대화에 오른 '북한산' 작가 민정기
"여러 시각 겹쳐 그려…文 대통령, 기법 정확히 답변"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이것은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이냐."(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양화인데 우리 동양적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문재인 대통령)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실내에 걸린 그림들을 소재로 간간이 이야기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그중에서도 로비에 설치된 대작 '북한산'에 관심을 보였다. 작가 민정기(69)가 2007년 그린 청록빛 북한산 전도다.
TV로 남북정상회담 주요 장면을 시청했다는 작가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 주셨다"고 말했다.
"북한 그림은 우리와 다르니까 김 위원장이 '북한산'을 좀 특별하게 봤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물음에 아주 확실하게 답변을 해주셨더라고요. (웃음)"
'북한산'을 비롯해 작가가 서양 재료인 유화물감을 사용해 그린 산수(山水) 풍경은 동양화 같다는 평가를 듣는다. 붓놀림이나 구도, 채색 등에서 전통 한국화 느낌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물감도 전체적으로 두껍게 바르지 않고 꼭 질감이 필요한 부분에만 바릅니다. 전체적으로는 얇게 여러 번 칠을 해서 톤을 조절하고요."
'북한산'은 응봉능선에서 바라본 북한산 전체 풍경을 담았다. 사실 응봉 쪽에서는 앞봉우리에 가려 삼각산 주봉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북한산 전체를 답사하고 나면 그 뒤편에 주봉 존재가 있겠거니 짐작하게 된다. 이러한 연역 과정을 거쳐 여러 시점에서 본 일종의 진경산수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사진과 같이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을 다각화해 산을 두루 살피면서 전체 모습과 기운을 한 화폭에 표현하고자 하는 창조적인 기법인 셈이죠."
민정기는 1980년대 민중미술을 이끌었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그룹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돼지' '그리움'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이발소 그림'과 '세수' '동상' '지하철Ⅱ'와 같은 도시풍경 작업을 선보였다.
그러다 1987년 경기 양평군으로 작업실을 옮긴 이후 자연 풍경을 중점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청록빛 산수풍경을 주로 선보였는데 '북한산'도 그중 하나다.
'북한산'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다. 작가는 남북정상회담 이틀 전에야 지인으로부터 판문점에 작품이 막 걸렸더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덜컥 걱정부터 앞섰다. "정말 중요한 행사의 중요한 장소에 제 작품이 걸린다는데, 혹시 제 작품이 부족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큰 그림은 조명 등이 잘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 기능을 못 하는 법이거든요."
그는 이날 TV로 그림을 본 뒤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이 상당히 신경을 써서 그림을 설치한 흔적이 보인다고 했다.
작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제 작품이 정말 중요한 역사 현장에 있었다는 점에 보람 이상의 것을 느낀다"며 벅찬 마음을 표했다. "오늘을 만든 좋은 뜻들이 앞으로도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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