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숭고한 정신 기억하자'…전국 곳곳서 국가기념일 추진

입력 2018-04-29 06:00  

'그날의 숭고한 정신 기억하자'…전국 곳곳서 국가기념일 추진
대전 3·8 민주의거·강원 사북민주항쟁·창원 부마민주항쟁 등

(전국종합=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1960년 3월 8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분노한 대전지역 고등학생 1천여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학생들은 외부세력의 학원침투 반대, 교내에서의 선거운동 반대, 언론탄압 반대 등을 담은 결의문을 발표한 뒤 도심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틀 뒤에도 고등학생 600여명이 학원 자유 쟁취를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 10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자 대전지역 민주화 운동의 효시로 불리는 '3·8 민주의거'다.
대전지역 학생들에게서 자극을 받은 경남 마산지역 학생들은 3·15 의거를 일으켰고, 이런 움직임은 4·19 혁명으로 이어져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시민들은 4·19 혁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대전에서 3·8 민주의거가 있었다는 사실은 거의 모른다.
시대 상황과 무관심 등으로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셈이다.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1960년 2월 28일 자유당 독재에 항의해 일으킨 '2·28 민주운동'이 지난 2월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민주화 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전에서는 3·8 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관 대전시장 권한대행은 최근 "대전시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3·8 민주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기 위해 국가기념일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8 민주의거 기념사업회, 대전충남 4·19혁명 동지회, 대전세종충남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대전사랑시민협의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대전지역회의 등 15개 단체도 '3·8 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강원도는 1980년 정선 사북 일대를 중심으로 일어난 노동운동인 '사북민주항쟁'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강원도와 사북항쟁동지회 등은 최근 열린 사북민주항쟁 제38주년 기념식에서 사북민주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민주화 역사 뿌리를 찾고자 국가기념일 제정에 힘쓰기로 의견을 모았다.
강원도는 구체적 로드맵을 만든 뒤 행정안전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사북민주항쟁은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부와 가족이 어용노조와 열악한 근로환경에 반발해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벌인 투쟁이다.
삼엄한 군부독재 시절 잔뜩 움츠려 있던 대중운동에 불씨를 지피고, 자치방범대를 조직하는 등 자치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보여준 민주항쟁으로 평가받는다.
강원도 관계자는 "당시 왜곡된 언론보도와 지역적인 한계 등으로 항쟁의 의미가 축소됐다"며 "단순한 노동자 투쟁이 아닌 민주항쟁으로서 의미가 있는 만큼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서는 부마민주항쟁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민·관이 힘을 모으고 있다.
안상수 창원시장은 "부마민주항쟁은 지역 자긍심과 혼이 깃든 역사적 자산"이라며 "기념사업회, 부산시 등과 연대를 강화하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문을 제출하는 등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체제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유신정권 타도와 정치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10월 16일 부산에서 시작한 시위는 10월 18일 창원시 마산합포·회원구 일원으로 확산했다.

시위는 짧았지만 뒤이은 10·26 사태로 유신체제를 끝낸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화 운동뿐 아니라 역사적 기념비가 된 날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지난해 6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6·15 남북공동선언일과 10·4 남북정상선언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고 적었다.
박 공동대표는 당시 "국가기념일로 지정한다면 6·15와 10·4 선언을 존중한다는 의사의 직간접적 표현이 될 것"이라며 "남북관계 국면을 돌파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도 관련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는 지난해 7월 독도의 날(10월 25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달라는 제안서를 문재인 정부 국민인수위원회(광화문1번가)에 제출했다.
10월 25일은 일본 시마네(島根) 현이 독도를 일방적으로 편입한다고 고시(1905년)하기 5년 전인 1900년 독도 관할권을 명시한 대한제국 칙령 41호가 제정된 날이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기념일은 48개다.
식목일, 장애인의 날, 과학의 날 등을 비롯해 2·28 민주운동 기념일, 4·19 혁명 기념일, 6·10 민주항쟁 기념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 정부 주관으로 기념행사를 열 수 있고, 관련 단체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전시 관계자는 "시대 상황과 시민 무관심 등으로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3·8 민주의거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국가기념일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에 3·8 민주의거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시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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