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집단성폭행 솜방망이 판결' 반발 확산…수만명 거리로

입력 2018-04-29 09:20  

스페인 '집단성폭행 솜방망이 판결' 반발 확산…수만명 거리로
'강간'아닌 '성학대' 적용이 발단…"가부장적·마초 문화 산물" 비판
판사 자격박탈 온라인 청원도…정부, 성범죄 관련법 개정 검토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스페인에서 집단 성폭행범에 내린 '솜방망이' 법원 판결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이틀 전에 이어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의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와 정부와 법원을 규탄하는 행진을 벌였다.
28일(현지시간) AFP통신과 미 CNN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북부의 팜플로나 등 스페인 전역에서 "이건 '성적 학대'가 아니라 '강간'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거리 행진이 벌어졌다.

팜플로나에서만 3만2천명에서 3만5천명이 참여했고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등 스페인 주요 도시에서도 동참했다.
발단은 26일 나온 법원 판결이었다.
2016년 7월 팜플로나에서는 27∼29세 남성 5명이 아파트건물 입구에서 18세 여성을 집단으로 성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수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소몰이축제(산 페르민 축제) 기간 중이었다. 세비야 출신인 남성들은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고 왓츠앱에 이를 '자축'하는 메시지까지 올렸다.
피해 여성은 사건 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길거리 벤치에서 발견됐다.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여성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들 남성에게 22년을 구형했지만, 남성들은 여성이 성행위에 동의했다고 주장하며 형량을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이들 남성에게 각각 징역 9년 형을 선고했다. '집단성폭행'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형량이 비교적 가까운 '성 학대' 혐의를 적용했다.
스페인 형사법상 강간혐의를 입증하려면 폭행이나 협박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형량이 낮은 성 학대 혐의가 적용된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이에 저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스페인 제1야당인 사회당의 아드리아나 라스트라 대표는 이번 판결에 "수치스럽다"며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문화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에서는 해당 판사들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원이 등장, 이날까지 120만여명이 서명했다.
스페인 최대은행인 산탄데르 은행의 최고경영자(CEO)인 아나 보틴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판결은 여성의 안전을 후퇴시켰다"고 비판했고, 판사 출신으로 현 마드리드 시장인 마누엘라 카르메나는 "정의에 대한 여성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스크지방의 수도원에 있는 카르멜회 수녀들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이들은 "우리는 속세와 단절된 삶을 살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옷을 입지만 저녁에 밖에 나가지 않는다. 파티에도 가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순결서약도 지켜왔다"며 "이건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이어 "우리는 우리 의사를 지킬 것"이라며 "자유롭게 그 반대 행동을 하는 모든 여성의 권리도 평가받거나 강간을 당하거나 위협을 당하거나 살해 혹은 모욕을 당하는 일 없이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페인 정부는 성범죄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noma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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