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리비아 모델·이란 핵협정 파기가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 줄수도"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9일(현지시간) 북한의 비핵화 방법으로 '리비아식 모델'을 공개 언급한 데 대해 미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대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무자비한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즉각적으로 핵을 포기하도록 한 '리비아 모델'을 미국은 성공 사례로 평가하겠지만 북한의 경우 이같은 방식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당시 카다피가 핵무기 보유를 포기하고 나서 그에게 벌어졌던 일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떠올린다면 리비아식 모델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카다피는 2003년 핵 포기를 합의하고 미국 테네시주로 모든 핵 장비를 보냈다. 이후 미국은 원유 수출 제재를 해제하고 국교 정상화를 해줬다.
그러나 2011년 민주화운동인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유럽 동맹국들은 민간인 학살을 중단시키겠다며 반군을 지원, 카다피를 정권에서 끌어내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추적해 살해했다.
NYT는 만약 카다피가 자신에게 닥칠 결과를 알았다면 핵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리비아가 계속 핵을 보유했다면 미국과 유럽이 리비아를 상대로 무력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바로 이 지점에 북핵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보유에 이처럼 공을 들이고, 미국과의 모든 협상에 있어 북한을 침략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포함할 것을 종용하는 이유가 리비아와 같은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인데 그런 북한이 미국의 리비아식 모델 제안을 수용할 리 없다는 해석이다.
외교 전문가들도 북한이 미국의 리비아식 모델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앤서니 블링큰 전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 정권은 리비아식 모델에 신뢰가 없다는 이야기를 중국으로부터 직접 들었다"며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봤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그는 "리비아 모델을 제안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 파기를 위협하는 것은 북한 김정은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주고 협상에 대한 희망도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15년 전의 리비아와 현재 북한은 보유 핵무기의 수준부터 여러 면에서 다르므로 리비아식 모델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리비아는 2003년 미국과 핵 합의를 할 당시 북한처럼 핵무기를 보유한 것이 아니라 핵무기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수준이었다.
또한 카다피가 당시 미국과 협상한 것은 이라크 전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의 최후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의 군사적 위협 정도는 과거의 리비아에 비할 정도가 아니라고 로버트 조지프 전 국무부 차관은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볼턴 보좌관 함께 일했던 조지프 전 차관은 그러나 리비아 모델이 이상적이라는 점에선 볼턴 보좌관과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리비아에 한대로 똑같이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거(리비아 사례)에서의 교훈을 얻으려는 것"이라며 리비아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김 위원장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진심 어린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정보, 경제 제재, 외교, 무력 사용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모든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핵실험 장소에 언제 어디서나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황이 너무 달라 리비아와 북한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다고 말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핵 비확산 군축담당 특별고문은 "리비아는 원심분리기 부품이 있어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미국이 수송기로 핵 프로그램 전체를 가져가 버릴 수 있었다"면서 "반대로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는데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핵 생산 시설도 있는데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들을 찾아내 폐기하는 데만 몇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그동안 카다피의 최후를 거론하며 핵무기 보유 정당성을 주장해 온 북한이 리비아 모델을 받아들일 리 있겠느냐면서 오히려 볼턴이 북한과의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것에 대비해 이런 분위기를 띄우는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을 소개했다.
비확산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연구원은 "볼턴은 오직 한가지 목적, 즉 협상이 실패했을 때 외교를 불신하면서 보다 공격적인 해결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목적으로 약간의 협상 기간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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