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 첫 기획전 '디시전 포레스트' 개막
연간 3차례 기획전…소장품 일부도 전시 계기 공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사각형 공간에 설치된 카메라 수십 대가 사람들을 비췄다. 자신 모습이 벽면에 실시간으로 등장하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은 멈칫멈칫 걸음을 멈추거나 웅성댔다. 그런 모습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카메라들은 렌즈를 밀었다 당기기를 반복하며 사람들을 비췄다.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지하에 전시된 '줌 파빌리온'은 라파엘 로자노헤머(51) 작업 세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카메라들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찍지만, 그 역할은 우리가 예상하듯이 감시가 아니다. 얼굴인식 및 형태감지 알고리즘을 활용해 사람들 관계 변화를 살피는 것이 주 임무다.
"인간을 감시하는 데 쓰이는 카메라들이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함께 있었고, 거리는 어떻게 변하는지 관계를 측정하는 도구로 바뀐 셈입니다."
3일 전시장에서 만난 로자노헤머는 "'줌 파빌리온'은 사람들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2000년 멕시코시티 광장에서 하늘을 향해 서치라이트를 쏘아 올린 작품 '버티칼 엘리베이션'으로 이름을 알렸다. 사람들이 작가가 개설한 웹사이트에서 무작위로 각도와 시간 등을 입력하고, 그에 따라 조명이 움직인다는 점에서 조명쇼 이상 작품이었다. 그는 '버티칼 엘리베이션'을 비롯해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대형 인터랙티브 공공 프로젝트를 펼쳐왔다.
올해 초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에 새롭게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첫 기획전 주인공으로 그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승창 관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관람객이 와야 미술관인 셈이고 관람객이 함께해야 온전한 작품이 된다"라면서 "그런 점에서 로자노헤머 작업은 우리 미술관이 지향하는 바와 연결되는 게 많다"라고 설명했다.
전시 '디시전 포레스트'에는 작가 26년 화업을 보여주는 작품 29점이 나왔다.
지하 '샌드 박스'(2017)는 미국 샌타모니카 해변에서 진행한 공공 프로젝트를 실내로 옮겨온 것이다. 어둠 속에 죽어 있던 모래더미는 관람객들이 신을 벗고 들어가 모래를 밟고 그림자를 쫓으면서 해변으로 변한다.
'에어 본 뉴캐스트'(2013)는 프로젝터로 벽면에 투사한 뉴스 기사들이 관객 그림자놀이를 통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작품이다.
쌍둥이를 임신한 아내 초음파 검사를 보면서 착안한 '펄스 룸'(2006)도 탄성을 자아낸다. 관객이 기계를 잡으면 컴퓨터가 맥박을 감지하고, 그 맥박 속도에 따라 천장 전구가 깜빡인다.
태양을 주제로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협업한 결과물인 신작 '블루 선'도 사옥 1층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작들은 하나같이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따뜻한 감성을 구현하고 있다.
작가는 "기술은 이미 우리 피부처럼 들어와 있는 상태이고 피할 수도 없다"라면서 "우리를 둘러싼 기술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서성환 회장 수집품을 기반으로 1979년 출발했다. 2009년 태평양박물관에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신사옥에 둥지를 튼 미술관은 현대미술과 고미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기획전을 연간 3차례 정도 선보일 계획이다. 올해 10월에도 조선 병풍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기획전이 예정돼 있다.
보물인 수월관음도를 비롯해 5천여 점에 달하는 소장품 일부도 전시 때마다 일부 함께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창업자가 아껴 모은 차 관련 도자와 여성 공예품이 대부분이라고 미술관 측은 전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컬렉터이기도 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컬렉션과는 별개다.
'디시전 포레스트' 전시는 8월 26일까지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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