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우기' 번역한 신간 '쾌락의 정원'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난 이어(李漁, 1611∼1680)는 벼슬길에 오르고자 했으나 명에서 청으로 왕조가 바뀌자 과거를 포기하고 예술가가 된 인물이다.
그는 항저우(杭州)와 난징(南京)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소설과 희곡을 쓴 작가 겸 비평가였다. 또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 전문 출판인이자 극단을 꾸려 전국을 돌며 공연한 연극 연출가였다. 건축에도 조예가 상당해 직접 정원을 설계했다.
이어가 1671년에 쓴 '한정우기'(閑情偶奇)는 희곡 연출과 잘 먹고 잘사는 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생활 잡학 사전이다. 전체 8부 가운데 앞부분인 사곡부(詞曲部)와 연습부(演習部)를 제외한 6개 부는 대부분 의식주를 다뤘다.
신간 '쾌락의 정원'은 '한정우기' 중 성용부(聲容部), 거실부(居室部), 기완부(器玩部), 음찬부(飮饌部), 종식부(種植部), 이양부(이<臣+頁>養部)를 국내 초역했다. 약 350년 전 중국 강남 지방에 거주한 다재다능한 예술가가 지향한 삶의 즐거움과 생활 태도가 고스란히 담겼다.
성용부는 여성 목소리와 용모가 주제다. 피부, 눈썹과 눈, 손과 발, 세수와 빗질, 얼굴 화장, 머리 장식, 옷이 어떠해야 아름다운가를 논했다.
예컨대 여성 옷에 대해서는 "화려한 옷이 귀한 것이 아니라 우아한 옷이 귀하며, 집안 환경과 어울리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용모와 어울리는 것이 귀한 것이다"라고 평했다.
거실부는 창문, 난간, 담장, 편액 같은 건축문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고, 기완부는 집에 두고 감상하는 물품을 설명했다. 이어지는 음찬부는 음식, 종식부는 식물 재배, 이양부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주제다.
그중 음식은 각종 채소부터 곡식, 고기와 해산물을 망라했다. 이어는 검소함과 복고(復古)를 이유로 채식을 추천하면서 "동물을 도살하는 것을 무겁게 여기고 생명을 애석히 여기는 것을 자나 깨나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자인 김의정 성결대 교수는 물질문화가 만개한 시대에 나온 사물에 관한 기록, 삶 자체를 중시한 생활미학 서적, 기물과 도구 활용법을 고민한 실용서라는 측면에서 '한정우기'를 높이 평가한다.
아울러 김 교수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고 감상하는 일련의 체계적 서술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면서도 "이어의 강점은 생각과 감정을 속임 없이 다 드러냈다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책 분량 792쪽 중 약 30%에 해당하는 248쪽에 걸쳐 원문을 실었다. 글항아리. 3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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