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산불 1년…울창했던 소나무 숲은 숯덩이로 변해 벌목 중
주민, 잿더미 위에 보금자리 재건 안간힘…"일부는 산불 후유증으로 극단적 선택도"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지금도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어요. 바람이 불면 새카만 숯가루가 날아와요."
6일로 대형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을 맞는 강원 강릉시 성산면의 한 야산에서는 불에 탄 나무들을 베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가파른 산길로 오르자 불에 타 검게 변한 소나무를 베고, 토막을 내는 엔진톱 소리가 요란했다.
중장비들이 불에 타버린 수십 년생 소나무를 집어 트럭에 싣자 아슬아슬하게 산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불에 타 죽은 나무를 베어내고 옮기는 작업이 종일 반복했다.
이 산불 피해목은 종이를 만드는 인천의 펄프 공장으로 옮겨진다.
봄철을 맞아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자 숲에서는 불에 탄 나무의 냄새가 살아났다.
이처럼 산주가 타버린 소나무를 베고 새로운 묘목을 심는 산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벌목 작업이 이뤄지는 경계의 다른 산림은 산주와 연락이 안 돼 검게 타버린 나무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벌목 관계자는 "산불로 피해를 본 산림 가운데 산주와 연락돼 벌목 작업을 한 곳은 3분의 1도 안 될 것"이라며 "불길이 스쳐 간 소나무들은 지금도 계속 죽어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상 부근으로 오르자 소나무들이 마치 전쟁을 겪은 듯했다.
하늘을 찌를 듯했던 소나무들은 숯덩이로 변한 채 집단으로 말라 죽어버렸다.
숲 바닥에는 마치 조금 전에 산불이 지나가면서 열기에 깨진 것처럼 갈라진 바위들이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불탄 나무를 베어낸 산 너머로는 붉은 민둥산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래도 검은 숲의 바닥에서는 봄을 맞아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화마가 지나갔던 나무 아래로는 참나무, 아까시나무가 봄기운을 받아 파릇파릇했다.
타버린 소나무 아래에서는 노란 민들레도 고개를 내밀었다.
산불이 난 지 1년이 됐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
성산면 관음1리의 한 주민은 산불로 집이 모두 타 버린 뒤 컨테이너로 된 임시 거주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거주 환경이 녹록지 않았는지 집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개 2마리가 주인 대신 컨테이너를 지켰다.
형편이 조금 나은 다른 주민들은 잿더미 위에 다시 보금자리를 신축하고 있었다.
주민 최종필(77·성산면 관음1리)씨는 "산불 감시원이 '빨리 집에서 나오라'고 소리쳐 나가고 나서 집이 시뻘건 불길에 완전히 사라졌다"면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산불 피해 주민 중에는 땅 주인의 승인을 받지 못해 아예 마을을 떠나 도심의 아파트로 옮긴 경우도 있다.
주민 정영교(83)씨는 "인심 좋은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심의 아파트에서 제대로 살 수 있겠느냐"라며 안타까워했다.
산불이 남긴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다 스스로 세상과 작별한 주민도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산불 발생 1년을 앞두고 20여 일 전 A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불에 타버린 집 근처의 숲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산불 피해목을 베어내던 벌목 관계자에 의해 발견됐다.
한 주민은 "시골이 좋다며 집을 사서 들어온 지 석 달 만에 산불로 집이 모두 타 빚을 지자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며 "산불로 나무도, 우리들의 가슴도 숯덩이처럼 타버렸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수십 년간 가꿔온 숲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던 강릉 산불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강릉과 삼척에서는 지난해 5월 6일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 면적(0.714㏊)의 1천424배에 달하는 산림 1천17㏊가 사라졌다.
강릉시는 올해 어버이날 연휴 기간에도 입산자에 의한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특별 진화대 등을 편성해 비상 대기하고 있다.
dm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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