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인왕산, 2007년 북악산 시민 품으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은 한양을 도읍으로 삼은 뒤 태조 5년(1396) 방어와 경계 설정을 목적으로 한양도성(漢陽都城·사적 제10호)을 쌓았다.
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따라 길이 18.6㎞인 성을 지었다. 도성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대문(大門)을 냈고, 대문 사이에 소문(小門) 네 개를 만들었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과 보물 제1호 흥인지문은 한양도성 남대문과 동대문이고, 보물 제1881호 창의문은 서북쪽에 난 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순성(巡城)을 즐겼다. 성벽을 따라 거닐면서 경치를 감상하고 과거 급제를 기원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양도성은 훼손됐으나, 성이 있는 산은 자유롭게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1968년 1월 김신조를 비롯한 남파 무장공작원들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인왕산과 북악산은 출입이 통제됐다.
6일 문화재청과 청와대에 따르면 50년간 일반인이 가지 못한 인왕산 옛길 330여m가 내년 상반기 이전에 개방된다. 풍수상 한양도성의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인왕산은 1993년 2월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대부분 개방됐으나, 경호와 군사 관련 시설물이 있는 곳은 여전히 금단의 영역이었다.
이른바 '김신조 사건' 이후 한양도성 인왕산과 북악산 구간은 25년간 폐쇄됐고, 1993년을 기점으로 25년 동안 순차적으로 개방됐다.
그해 12월에는 인왕산과 북악산을 잇는 지점에 있는 창의문이 시민 휴식처로 단장해 일반에 공개됐다.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불리는 창의문은 1623년 인조반정 때 반정 세력이 도성으로 들어간 통로였다.
인왕산과 창의문 개방 이후 북악산 개방까지는 10여 년이 더 걸렸다. 노무현 정부는 북악산 삼청 터널 기슭에 있는 북문인 숙정문 관람을 2005년 9월 허용했고, 2007년 4월 5일에는 한양도성 북악산 구간 4.3㎞를 전면 개방했다.
정상에 오르면 경복궁 너머로 도심 풍경이 펼쳐지는 북악산에는 총탄 흔적이 남은 소나무와 청와대 방호를 위해 약 30년간 벌컨포 진지를 운용한 자리가 있다. 지금도 군사시설이 있는 북악산은 입장 시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인왕산과 북악산 구역은 아니지만, 숭례문도 2006년 중앙통로가 개방됐다. 일제가 1907년 도로를 내고 성을 허물면서 섬처럼 고립됐던 숭례문은 약 한 세기 만에 관람객 출입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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