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보안 유지해온 억류자 협상 관행 깨…'클리프행어' 방불"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주 '세기의 담판'이 될 북미정상회담 개최 장소와 날짜를 놓고 '리얼리티 쇼'를 하듯 감질나게 애를 태우며 흥행몰이를 해왔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판문점 이야기를 꺼낸 뒤 판문점이 막판에 개최 후보지로 급부상했으나, 당초 유력한 후보지였던 싱가포르로 원점 회귀하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며칠 내 결정할 것"이라는 발언에 이어 4일 기자들에게 "장소와 날짜를 정했다"고 말했지만, 아직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개봉박두', '채널 고정'을 외치면서 극적 효과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북미 정상 간 비핵화 담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전 세계의 애를 태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파격적 스타일은 북미정상회담 개최와 맞물려 이미 9부 능선을 넘은 듯 보이는 북한 내 억류 미국인 3인에 대한 석방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일 "북미정상회담 개최 장소와 예상되는 성과 등을 놓고 감질나는 힌트들을 하나씩 떨어트리며 즐겨온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마치 '클리프행어'처럼 다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클리프행어란 매회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끝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속 드라마나 쇼를 일컫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트위터 글을 통해 "지난 정부가 북한 노동교화소로부터 3명의 인질을 석방하라고 오랫동안 요청해왔으나 소용없었다"면서 "채널고정!(Stay tuned!)"이라고 말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인질(억류 미국인)들과 관련해 이미 많은 일이 일어났다", "매우 매우 좋은 일들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석방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 법무팀에 합류한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은 3일 방송 인터뷰에서 특별한 설명 없이 "3명의 억류 미국인이 오늘 석방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줄리아니 전 시장의 발언은 특별한 내부 정보 없이 언론보도를 토대로 추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공개적 발언은 사안의 예민함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써온 그간 억류자 석방 협상의 외교적 관행을 분명히 깨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6자 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WP에 "북한과 5분만 협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미리 말하지 않는게 좋다는 걸 명약관화하게 알게 된다"며 "그들(트럼프 행정부)은 과거와 다르게 일 처리를 한다는 걸 자랑으로 여기지만, 이는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심각한 사안이다. 좀 더 절제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박정현 한국석좌도 WP에 "우리는 진짜 생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는 신중한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고, 앞서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지난 3일 CNN 인터뷰에서 "(억류자 협상 상황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구출 노력을 오히려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쪽에서는 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할 때 억류자 거취를 선결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음으로 인해 조기에 양보를 끌어낼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꼬집기도 한다.
특히 WP는 아직 정확한 건강 상태 등이 알려지지 않은 억류자들의 '운명'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억류자 문제를 김 위원장의 지렛대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외교정책 전문가들의 지적을 소개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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