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작가 신작…시리즈로 이어갈 예정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당당하고 매력적인 소녀 영웅이 탄생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 여성인 적이 거의 없던 현실에서 눈길을 끄는 판타지 창작 동화가 나왔다. 김혜정 작가의 신작 '헌터걸' 이야기다.
2008년 '하이킹 걸즈'로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받았고, 청소년소설 '텐텐 영화단', '닌자 걸스', '판타스틱 걸' 등 작품으로 많은 독자에게 알려진 김혜정 작가가 지난 3년간 고심해서 준비한 작품이다.
제목 '헌터걸'은 우리말로 하면 '사냥하는 소녀'라는 뜻. 헌터걸이 사냥하는 대상은 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이다. 고전은 물론 현대물에서도 악당과 싸우는 영웅이 대부분 소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녀 영웅의 탄생은 분명 참신하다.
게다가 작가의 물오른 필력으로 서사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어린이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다루면서도 보편성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흐름은 어른 독자들도 사로잡을 만하다.
작가는 이 헌터걸을 시리즈로 이어갈 계획으로, 이미 3권 후반부까지 원고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거울 여신과 헌터걸의 탄생'. 헌터걸이 탄생하기까지 배경을 소개하고 첫 번째 악당 '거울 여신'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이야기 모티프를 서양 고전설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가져왔다. 1284년 6월 26일, 독일 어느 도시에서 피리 든 사나이가 아이들 130명을 데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사나이에게 '쥐 떼를 쫓아 주면 금화를 주겠다'고 한 어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
작가는 이런 설화 배경에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인간 사회 현실이 있다고 봤다. 어른들의 무책임이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역사는 오래됐고, 날로 심각해진다는 문제의식이다.
헌터걸은 1284년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암약하며 어린이들을 위협한 '피리 부는 사나이'에 맞서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어른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 주술에 쉽게 걸려 조종당하기 때문에 열두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만 헌터걸로 활동한다. 소년들도 헌터가 될 수 있어 '헌터보이'도 있지만, 이 동화 주인공은 헌터걸이다.
그 운명의 주인공은 열두 살 소녀 '강지'. 열두 살을 맞은 생일에 낯선 할머니가 찾아와 헌터걸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강지는 네 살 때 엄마를 잃고 아빠 손에 길러졌다. 처음 방문한 외할머니는 이 가족의 모계가 헌터걸 집안이고, 양궁 선수였던 엄마도 사실은 헌터걸이었다고 알려준다. 강지 역시 어린 시절부터 양궁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강지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혼란스럽기만 하고, 할머니가 강요하는 고된 헌터걸 훈련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만 싶을 뿐이다. 그렇게 엇나가던 강지 마음을 돌릴 사건이 벌어진다. 악당 '거울 여신'이 등장한 것이다. 거울 여신은 인터넷에서 인형 같은 미모로 떠오른 스타다.
여자아이들은 여신에게 흠뻑 빠져 닮고 싶어하는데, 이 여신은 아이들의 외모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아이들에게 각각 외모 점수를 매기고, '너는 이것만 고치면 예뻐질 거야'라고 말한다. 그 단점을 고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관련 미용 물품을 판매하거나 치과 등 병원을 소개해준다.
강지 역시 처음엔 여신 말에 혹해 치아 교정을 하러 치과에 간다. 그런데 거기서 우연히 거울 여신의 실체를 알게 된다. 강지는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리는데, 아무도 강지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여신을 욕했다는 이유로 '왕따'가 된다.
분노한 강지는 거울 여신을 혼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헌터걸의 길에 들어선다.
이 동화는 끊임없이 외모 콤플렉스를 부추겨 영업에 이용하는 자본주의 산업 구조와 여성들에게 특히 외모 평가를 가혹하게 해대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재미와 의미를 갖춘 좋은 동화의 탄생이다.
윤정주 그림. 184쪽. 1만2천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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